몬시뇰 “젊은이들이 좌절하는 사회 미래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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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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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착한 사제는 영성과 인간성 다 아울러야


사목 대담집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펴낸 정의채 몬시뇰-차동엽 신부

가톨릭계 원로인 정의채 몬시뇰(왼쪽)과 베스트셀러 ‘무지개 원리’의 저자이자 미래사목연구소장인 차동엽 신부가 18일 한국 사회와 교회 등을 주제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가톨릭계 원로인 정의채 몬시뇰(왼쪽)과 베스트셀러 ‘무지개 원리’의 저자이자 미래사목연구소장인 차동엽 신부가 18일 한국 사회와 교회 등을 주제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최근 통일세 얘기가 나왔는데 돈을 쓰려면 먼저 왜,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죠.”

18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원로 신부 사택에서 만난 가톨릭계 원로 정의채 몬시뇰(85)은 느릿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대통령의 말은 중천금인데 너무 쉽게 나왔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최근 후배 신학자이자 미래사목연구소장인 차동엽 신부(52)와 대담집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를 출간했다. 정 몬시뇰은 1953년 사제품을 받은 뒤 성심학원 이사장, 명동성당 주임신부, 가톨릭대 총장을 지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차 신부는 91년 사제품을 받은 뒤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사목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00만 부 이상 팔린 ‘무지개 원리’, ‘행복선언’ 등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가톨릭계의 ‘스타 신부’다.

‘오늘 주인공은 몬시뇰’이라며 말을 아끼던 차 신부는 통일 문제가 언급되자 자신의 가족사를 털어놓았다. “기자였던 아버지는 6·25 때 공산당에 끌려가 부역자로 몰려 고난을 겪었고 북쪽의 (다른) 어머니를 기다리다 알코올 중독자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모세가 후손들에게 남긴 것은 ‘잊지 말라, 기억하라’의 두 단어였음을 강조했다. “유대인 젊은이들은 옛 고난을 재현하는 파스카 축제를 통해 쓴 풀을 씹고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먹으면서 3200년 전 고난의 엑소더스를 자신이 주인공인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로부터 미래를 배우는 데 실패했습니다.”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두 신학자는 30여 년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젊은이’와 ‘미래’라는 키워드에 깊은 공감을 표시했다.

사제의 본질은 하느님의 사람, 항상 기도하며 희생의 길 가야

정 몬시뇰은 어떤 이유로든 젊은이들이 생명을 포기하거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병들어가는 사회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88년 명동성당 주임신부로 있을 때 성당은 좌파에 연계된 시위로 미사조차 진행할 수 없었죠. 그러다 조성만 군이 투신자살했습니다. 참, 맑은 청년이었는데…. 사고 전 잠시 마주쳤는데 고개를 돌리더군요. 그의 자살 이후 35번째까지 순서가 정해졌다는 말까지 나돌았습니다. 그때 성당은 시위 장소가 아닌 성당으로 지켜야 하고, 그래야 젊은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 시위대의 퇴거를 요청했습니다.”

차 신부는 “케네디 대통령이 61년 평화봉사단을 창설해 젊은이들을 전 세계에 파견한 사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최근 사회 문제로 떠오른 청년실업 문제의 대안이고, 그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몬시뇰도 “15만∼20만 명의 젊은이를 적절한 비용으로 전 세계에 내보낸다면 국가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담집에는 두 신부의 8차례에 걸친 대담, 정 몬시뇰의 사목 인생과 교회사에 얽힌 사연 등을 담았다. 정 몬시뇰은 2008년 타계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이탈리아 유학 뒤 귀국한 그는 1964년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소설 ‘파시’를 읽으면서 그동안 어눌해진 우리말을 고치려 했다. 그가 만난 박 선생의 첫말은 ‘서양승방(僧房)에 있는 분도 내 소설을 읽냐’ ‘다른 대목은 몰라도 죽음을 다룬 내용만은 자신 없으니 믿지 말라’였다.

“자청해 6개월간 박 선생에게 교리를 가르쳤지만 영세를 받기 2주 전 ‘죽음의 의미가 다가오지 않는다’며 포기하더군요. 그 후 박 선생은 영세를 받았고, 40여 년 뒤 임종 직전 병자성사(죽는 이들을 위한 마지막 예식)를 해 하느님의 섭리가 참 오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美평화봉사단 해외파견 사례-청년실업 돌파구로 검토 필요

사제이면서 신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두 신부에게 가톨릭에서 말하는 ‘착한 사제’와 미래 사목, 평신도와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착한 사제는 근원에 충실한 사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영성과 인간성, 둘 중 어느 하나도 잃어버려서는 안 되죠. 사제의 역할은 미래라는 시간을 내다보면서 그 시대마다 서려 있는 하느님의 구원섭리를 평신도에게 전해야 합니다.”(차 신부)

“사제는 사람과 하느님의 중재자인데 본질은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거죠. 이걸 잃어버리면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이나 다름없죠. 이 길을 걷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서로 사랑하라, 용서하라’고 했고, 불교의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얘기했죠. 내 경우 머리카락 하나도 하느님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은총임을 절감합니다.”(정 몬시뇰)

김갑식 기자 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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