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강제병합 직전 러시아로 망명시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8일 10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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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한일강제병합 직전인 1910년 6월 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려 했던 사실이 러시아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또 고종이 한국을 일본 세력권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러일간 협정체결에 반대한다는 뜻을 러시아 황제에게 사전 전달하려 했던 사실도 공개됐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가 2008년 펴낸 한국학총서 '러시아인에 비친 조선' 중 상하이 주재 러시아 상무관 고이에르의 1910년 6월 22일자 보고서에 따르면 고종은 신하와 의병 등의 도움을 받아 한국을 벗어난 다음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무르며 항일투쟁 거점을 만들고자 했다.

최덕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이 발굴, 18일 공개한 고이에르 보고서는 "고종이 현 수상인 박제순과 간도관리사 이범윤, 함경도 의병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북쪽으로 도망쳐 러시아 국경을 넘어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려고 한다고 전해왔다"고 적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당시 이미 몇몇 사람들이 고종의 망명을 준비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출발한 상태였다.

이 보고서에서 고이에르는 같은 달 중순께 자신을 찾아와 고종의 친서를 러시아황제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한 한국군 대위 현상건(玄尙健)과 애국계몽단체인 서북학회(西北學會) 간부 이갑(李甲)에게 망명 계획을 들었다고 썼다.

고종은 또 친서를 통해 러시아 황제에게 "러시아가 한일합병에 동의하는 내용의협정을 일본과 맺으려 한다는 소문이 있다"며 "나는 이를 믿을 수 없으며 폐하께서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고 태도 변화를 요청했다.

이갑은 고이에르에게 이 친서의 전달을 부탁했으나 거절당하고 결국 자신이 직접 러시아 페테르부르크로 가서 이를 황제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이 친서가 러시아 황제에게 전달이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러시아가 그해 7월4일 몽골과 한국을 각자의 세력권으로 인정하는 제2차 러일협약을 맺었다는 사실로 볼 때 친서가 전달되지 않았거나 전달됐더라도 러시아가 이를 거의 염두에 두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고종이 가명으로 해외에 예치한 거액의 비자금에 대해서도 "고종이 해외 체재 자금 마련을 위해 가명으로 예치했으나 인출에 애를 먹고 있다"고 언급했다.

학계는 고종이 황제에서 물러난 1905년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에 항일거점을 만들고자 시도했다고 보고 있다.

한편, 보고서에는 순종이 강제병합에 저항했다는 사실도 나온다.

고이에르는 이갑의 말을 인용해 "일본인들이 순종을 일진회의 대일병합 청원에 가담하도록 설득했으나 황제가 통곡하며 그런 조치에 서명하느니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낫다고 소리쳤다"고 보고하고 "데라우치가 통감에 임명되면서 통감이 불러주는 대로 법령에 서명하는 친일각료로 구성된 내각이 구성될 것이 분명하다"고 예측했다.

인터넷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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