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무심하게 들려주는 일상의 얘기들 속에 긴 여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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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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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김영하 지음/272쪽·1만 원/문학동네

김영하 씨(42)가 6년 만에 단편집을 내놓았다. 그간 꾸준하게 장편을 발표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로 반짝이는 단편들의 강렬한 인상도 있는 터다.

새 단편들은 감각에 기대지 않는다. 일상적인 얘기를 툭 던져놓는 식이다. 환상과 섞이는 작품도 있지만 별스럽게 묘사하지 않고 무심하게 얘기를 들려준다. 가령 악어에게 목소리를 빼앗긴 가수 얘기를 쓴 ‘악어’가 그렇다.

그렇지만 대개는 있을 법한 얘기다. 대학원 때 짝사랑했던 일본인 유학생과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나는 여성(‘마코토’),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고 통보한 옛 연인을 납치하다시피 바다로 데리고 가는 남자(‘여행’), 아이스크림에서 기름맛이 난다고 제조업체에 항의하는 부부(‘아이스크림’)…. 원고지 10∼20장의 짧은 소설 ‘약속’에서 남자는 지나가던 여자한테서 차비로 3만 원만 꿔달라는 느닷없는 부탁을 받고 ‘바다 이야기’에선 해변을 걷던 관광객 사내가 갑자기 영화촬영 팀으로부터 엑스트라로 출연해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내킬 때 쓴 소설”이라고 작가가 말하듯 치밀한 설계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감정의 물기를 좍 빼낸 작품들이 거꾸로 독자들에게 ‘당신이라면 어떤 감정을 느끼겠냐’고 묻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에서 기름맛이 나서 제조업체에 전화를 했더니 이 회사의 부장이 즉시 집에 왔다. 그는 기름맛 나는 아이스크림을 일곱 개나 먹으면서도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더니 기념품 탁상시계, 초콜릿 두 상자, 과자 선물세트를 부부에게 안겨주고 사라졌다. 소설은 그가 나간 뒤 부부가 집 밖을 나가 닭고기와 맥주를 먹고 마시는 것으로 끝난다.

작가는 단편 ‘아이스크림’에서 부부가 느꼈을 황당한 심정을 묘사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돌려놓는다. 수진이 옛 남자친구 한선에게 끌려가듯 여행을 갔다가 탈출하는 것으로 마치는 ‘여행’도 마찬가지다. 명쾌하게 형언하기 어려운 인물들의 감정들을 언급하기보다 던져 놓는다. 독자들이 언어라는 형식을 통하지 않고 그대로 느끼도록 한 것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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