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잔]“남편 출근하면 신발을 집쪽으로 광원들 무사귀환 비는 금기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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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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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풍속 이야기’ 정연수 씨

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은 “산업시대 독특한 생활양식을 구축한 탄광촌 문화를 농촌 문화처럼 연구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사진 제공 북코리아
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은 “산업시대 독특한 생활양식을 구축한 탄광촌 문화를 농촌 문화처럼 연구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사진 제공 북코리아
정연수 씨(47)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탄광’을 붙잡고 있다. 그는 탄광으로 석·박사 학위 논문을 썼고, 탄광과 광원을 소재로 한 한국의 시 1000편을 모아 ‘한국탄광시전집’을 냈다. 이번에는 탄광촌의 생활과 금기, 문화 등을 담은 ‘탄광촌 풍속 이야기’(북코리아)를 냈다. 그는 1982년부터 1991년까지 강원 태백시 장성광업소 기계실에서 탄광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다.

“농업과 어업을 기반으로 형성된 삶의 터전이 농촌과 어촌이듯이 광업에 뿌리를 둔 생활공동체가 탄광촌입니다. 농촌이나 어촌처럼 고유의 생활양식과 풍습을 가진 어엿한 우리 문화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책에서 태백시와 삼척시 도계읍 일대 1930∼90년대 독특했던 탄광촌 풍속을 재현하고 있다. 탄광촌은 산악지역에 자리함으로써 외부와의 교류가 원활하지 않았고, 이는 탄광촌 문화 형성의 근간이 됐다.

탄광촌은 3교대 근무를 하는 광원에 맞춰져 있었다. 광원의 아내는 남편의 출근 시간이 오후 4시여도 외출에서 돌아와 밥상은 꼭 차려줬다. 광부가 출근을 할 때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아내는 남편의 다른 신발을 반드시 집쪽으로 돌려놓았다. 광원이 길을 갈 때 여자들은 그 앞을 가로지르지도 않았다. 1980년대에는 어린 남자아이의 앞도 가로지르지 않는 풍습을 낳았다.

저자는 “사고로 언제 어디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광원들을 예우함으로써 그들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도록 하는데 생활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유난히 금기 문화가 많은 이유를 설명했다. 사고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꿈자리가 나빴다’고 하는 것이 공식적인 결근 사유가 될 정도였다.

저자는 탄광촌인 태백시 장성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전문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공무원 월급의 2배를 받는 ‘괜찮은 직장’인 장성광업소에 취직했다. 고향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탄광촌 사람들의 생활 자체가 눈에 들어왔다. 일부러 갱내를 드나들며 광원들의 용어를 배우고 사연을 묻고 다녔다. 광업소에서 일한 10년 동안 기록한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하느라 1991년에는 개인연구소인 탄전문화연구소를 차렸다. 당시 모은 자료는 2003년과 2008년에는 강릉대에서 현대문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는 데 밑거름이 됐다. 2006년에는 ‘탄광촌 금기어·금기행위’ 논문으로 전국향토문화공모전에서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저자는 “탄광촌에 대한 역사나 문화를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 많아 이를 연구해두지 않으면 곧 사라질 것 같아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탄광촌에는 현대에는 발견하기 힘든 끈끈한 정이 많았다고 말한다. 술에 취한 광원이 실수로 사택의 다른 집에 들어가더라도 이불을 덮어주며 잠을 재워줄 정도였다. 사택을 이양할 때면 방을 넓힌 추가 비용을 가능한 한 적게 받으려는 양도자와 조금이라도 더 쳐주려는 양수자가 실랑이를 벌이는 인정 넘치는 풍경이 연출되곤 했다.

기온이 30도를 넘기면 폭염이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갱내는 통상 35∼36도를 맴돌고 습도도 70%가 넘는다. 광원들은 이런 악조건과 싸우면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저자는 “운명에 굴하지 않고 광원이라면 누구나 3∼5년 안에 목돈을 마련해 새 삶을 살 희망을 품고 살았다”며 “이른바 ‘막장 정신’에는 이런 생명력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절망의 공간에서 희망을 캤던 광원의 삶은 실의에 빠진 현대인들에게는 힘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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