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로 만나는 6·25]<2>소리 없는 무기, 전단지 심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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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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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삐라로 파묻어라” 25억장 살포
고향의 가족 생각나게 하거나 투항하면 환대한다는 내용
月 5000만~8000만 장 뿌려 北참모장 등 104명 투항 효과

‘국제연합회는 미군에게 북한의 무모한 침략에 대해 반항하는 귀국을 원조하라고 요청하였음으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원조하겠습니다. 침착 대담하며 맹렬히 적을 대항하십시오. 우리는 한국과 힘을 합하여 침략자를 귀국으로부터 격퇴하겠습니다.’

6·25전쟁 발발 사흘째인 1950년 6월 28일 남한 전역에는 이 같은 내용의 전단(삐라) 1200만 장이 미군 37수송비행단 소속 C-46 수송기에서 뿌려졌다. 유엔 로고와 함께 영문 타자체와 국한문 혼용 펜글씨체로 인쇄된 이 전단은 380장 중 6·25전쟁 때 사용된 첫 전단이다. 이 전단은 6·25전쟁 중 하루에 가장 많이 뿌린 전단으로도 기록됐다.

전쟁기념관은 현재 380장의 심리전 전단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200장이 개인이나 단체에서 기증받은 것이며 나머지는 정부기관 등으로부터 이관을 받거나 구입한 것이다. 6·25전쟁 때 사용된 전단은 모두 162장으로 이 중 129장은 기증을 받았다. 기증자는 모두 23명으로 외국인도 5명이 포함됐다.

○ 보이지 않는 전쟁 ‘심리전’

6·25전쟁 때 유엔군과 북한군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전쟁인 ‘심리전’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적군의 사기를 꺾고 투항시키기 위해 양측은 병사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내용의 전단을 대량으로 살포하고 확성기와 라디오를 통한 방송도 했다.

프랭크 페이스 미 육군장관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적을 종이(전단)로 파묻어 버려라”라고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만큼 심리전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쟁기념관 측에 따르면 유엔군은 전쟁 발발 이후 휴전까지 모두 25억 장의 전단을 한국군과 한국민, 북한군과 북한 주민, 중공군을 향해 살포했다.

시기별로 개전 초기에는 주로 한국군과 한국민에게 전단을 뿌렸고 이후 점차 북한군과 중공군에 대한 살포가 늘어났다. 전쟁 발발 직후 1개월간 북한군을 대상으로 한 유엔군의 전단 살포는 단 한 차례에 불과했으나 이후 점차 늘어났다. 1951년 중반 이후부터는 매달 5000만 장 이상의 전단이 살포됐고 1952년에는 매달 8000만 장으로 늘었다.

심리전의 효과는 적지 않았다. 국군심리전단이 펴낸 ‘미 육군 전투 심리전의 역사’에 따르면 서울 근처에서 104명이 전단을 소지한 채 항복했다. 이들 중에는 북한군 13사단의 참모장도 있었다. 그는 전단을 통해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알았고 북한에 승산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항복했다고 진술했다 한다.

○ 주요 메시지는 ‘고향의 식구를 생각하라’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군과 유엔군이 1950년 9월부터 1951년 11월 말까지 살포한 전단 가운데 그림을 활용한 전단은 모두 219종이었다. 이 중 북한군을 대상으로 한 전단이 118종이었고 중공군 대상 전단은 101종이었다. 전단은 주로 가족을 생각나게 하거나 투항하면 환대받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향수’라는 작전명으로 뿌려진 전단의 메시지는 ‘고향의 식구들을 생각하라’는 것으로 북한군과 중공군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이었다. 또 작전명 ‘나이팅게일’ 전단은 ‘당신은 포로로서 환대받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고, 작전명 ‘불도저’ 전단은 ‘유엔군은 강대하다, 당신들은 결국 패배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밖에 ‘당신의 상관, 우군, 전쟁 목적, 공산주의자를 믿지 마라’ ‘당신은 이용당하고 있다’ ‘전단 내용대로 따라 하면 안전하게 투항할 수 있다’는 내용의 전단도 뿌려졌다.

북한군도 전단을 살포했다. 북한은 제공권을 유엔군에 빼앗겼기 때문에 소년 등을 시켜 배낭에 담긴 전단을 뿌리도록 했다. 미국 크리스마스 잡지의 맥주 광고와 북한 지역에서 후퇴하는 해병대원의 모습을 담은 전단에는 ‘크리스마스-집-행복.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희가 무사히 집에 돌아오기를 원한다. 도망갈 길을 궁리하라’라고 적혀 있다. 유엔군을 특히 동요시켰던 전단은 ‘한국은 한국인들이 알아서 하도록 두어라’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심리전을 위해 북한군과 중공군을 대상으로 살포한 전단.북한군 장병들에게 김일성을 위해 헛된 죽음을 하지 말라고 권유하는 내용의 한글 전단(위)과 소련의 사주를 받은 중국 공산당이 중공군 병사들을 전화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중국어 전단.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심리전을 위해 북한군과 중공군을 대상으로 살포한 전단.북한군 장병들에게 김일성을 위해 헛된 죽음을 하지 말라고 권유하는 내용의 한글 전단(위)과 소련의 사주를 받은 중국 공산당이 중공군 병사들을 전화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중국어 전단.
■ 한국전쟁 삐라 실물 445점 공개
청계천문화관 15일부터


‘제군은 이 이상 더 목숨을 희생하지 말고 유엔의 평화 행진에 참가하라!’(1951년 7월 6일 유엔군이 북한군 및 남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뿌린 전단). ‘Darling, I will dream that you are coming back to me this Christmas’(당신이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돌아오실 거라 믿어요. 1950년대 초 중공군이 유엔군을 상대로 뿌린 전단). ‘청계천문화관(서울 성동구 마장동 서울역사박물관 분관)은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15일부터 8월 22일까지 ‘보이지 않는 전쟁, 삐라’ 특별전을 연다. 전쟁 발발 이후 유엔군과 북한군이 민간인과 상대방을 향해 실제로 뿌렸던 전단(삐라) 445점이 한자리에 공개된다. 전단 실물이 대규모로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6·25전쟁 때 한반도에 뿌려진 전단은 약 28억 장으로 추정된다. 유엔군이 중공군과 북한군을 상대로 뿌린 25억 장은 주로 정치적 비판 및 포로의 신변을 보장해 주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엔군이 발행한 전단에는 한국어 외에도 중국어와 영어 등 3개 국어가 사용됐다. 북한군은 심리전 요원들인 ‘적군와해공작요원’들이 직접 전단을 뿌렸다. 유엔군을 대상으로 한 전단은 주로 고국을 떠나 먼 나라에서 전쟁에 참가한 군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내용이었다. 당대 유명 화가들이 전단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고바우’로 잘 알려진 김성환 화백이나 ‘코주부’ 김용환 화백 등은 유엔군 측 전단을 만들었다. 반면 북한군 측 전단 제작에는 월북한 화가인 정현웅 임홍은 정관철 씨 등이 참여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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