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연극의 역사’ 남해 작은 마을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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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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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신협 63년 사료, 마을회관에 전시관 꾸며
김흥우 남해예술촌장 “테마별 박물관 조성 꿈”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극단인 극단 신협의 전시관에서 신협을 빛낸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는 김흥우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촌장. 2008년부터 경남 남해에서 살고 있는 김 촌장은 손수 예술촌 주변을 단장하면서 햇살에 검게 그을렸다. 남해=권재현 기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극단인 극단 신협의 전시관에서 신협을 빛낸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는 김흥우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촌장. 2008년부터 경남 남해에서 살고 있는 김 촌장은 손수 예술촌 주변을 단장하면서 햇살에 검게 그을렸다. 남해=권재현 기자
《경남 남해섬 한복판의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이동면 금석리 마을회관 2층에 가면 한국연극사를 장식했던 쟁쟁한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유치진 이해랑 김동원 장민호 백성희 황정순 최은희 조미령 노주현…. 영화 ‘애마부인’으로 유명한 안소영 씨까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극단 신협을 거쳐 간 이들이다. 1947년 창단된 신협(당시 명칭 극예술협회)은 좌익극단 일색이던 해방공간에서 우익을 대표하는 극단이었다. 1950년 창설된 국립극장의 전속극단이 되면서 신협(신극협의회의 약칭)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최근 법인화가 추진 중인 국립극단 60년 역사의 태동은 이렇게 민간극단 신협을 둥지로 이뤄졌다.》

1952년 환도 이후 민간극단으로 돌아간 신협은 1957∼1962년 국립극장 전속극단으로 들고 나기를 반복하다 1962년 1월 정식 국립극단이 창단되면서 그에 흡수된다. 하지만 그해 4월 드라마센터가 문을 열면서 국립극단을 빠져나온 단원들이 1963년 ‘신협’을 재건한다. 그렇게 2007년까지 모두 141편의 연극을 무대화한 신협은 국내 최고(最古) 극단의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연극사 관련 책자에도 잘 나오지 않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극단 신협 전시관’이 남쪽 바다 끝자락에 문을 연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여기엔 고승길 미마지아트센터 대표와 더불어 연극 관련 자료의 양대 수집가로 꼽히는 김흥우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촌장(70)의 열정이 숨어 있다.

동국대 교수와 한국희곡작가협회 이사장을 지낸 김 촌장은 2008년부터 아무런 연고가 없던 남해에 와 살고 있다. 폐교된 다초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남해군이 그가 50년간 사재를 털어 수집한 대본 6000여 권, 공연 및 영화 포스터 3000여 개, 팸플릿 4000여 개 등 25만여 점의 자료를 보관하고 전시할 공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학교(동국대)에 기증하려 했는데 공간 제공에 난색을 표해 이곳저곳을 물색하던 중 가장 적극적 반응을 보인 남해를 택했습니다. 공연 불모지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러 올까 반신반의했는데 2008년 20만 명, 2009년 50만 명이 다녀갔습니다.”

그러나 2층짜리 교사를 개조한 초음리 국제탈공연예술촌 역시 공간이 협소해 수집한 자료의 극히 일부만 전시하고 있다. 김 촌장이 30여 개국에서 수집한 탈 700여 개 중 200여 개와 국내 최초의 연극 관련 논문인 ‘조선연극사’(김재철 저) 2개 판본, 1936∼39년 발간된 동경학생예술좌 기관지 ‘막(幕)’ 1∼3호 합쇄본 등 희귀자료와 공연 포스터 정도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그가 낸 아이디어는 예술촌이 자리 잡은 다초지역 8개 마을회관마다 테마전시장을 마련하는 것. 예술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금석리 마을회관 2층의 ‘극단 신협 전시관’과 인근 창고건물을 개조한 ‘원방각 무대미술 전시관’이 첫 타자다. 신협전시관은 1980∼87년 신협 대표를 지낸 김 촌장이 수집한 자료가 토대가 됐다. 원방각 전시관은 신협 단원이자 국립극장 초대 무대과장이었던 고 문헌 김정환 전 동국대 교수가 기증한 무대미술작품이 중심이다.

예술촌 개관 2주년을 기념해 이달 중순 개관한 이들 전시관은 관람료를 따로 받지 않는 대신 모금함에 모인 돈을 전액 마을 복지기금으로 쓴다. 예술촌 1층에 마련된 200석 규모의 남해군 최초의 연극전용극장에선 주말엔 서울에서 내려온 연극 단체가 무료공연도 펼친다.

김 촌장의 꿈은 남해 바닷가 다초 지역 8개 마을을 저마다 특색 있는 작은 박물관을 갖고 있는 유럽 마을처럼 꾸민다는 것. 그 꿈이 이뤄질 수 있을까. 학예연구사를 둘 지원금을 확보하지 못해 고민이라는 김 촌장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마을 곳곳에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떠드는 정치인들 중에 예술촌을 찾아보는 이는 없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남해=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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