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응집이 없는 집은 사 람이 있어도 빈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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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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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작 장편 ‘빈집’낸 김주영

밥만 먹고 잠만 같이 잘뿐
결 속감 없는 쓸쓸한 가족 그려

“8년간 공백 끝에 낸 장편
이제 2년에 한 권씩 쓸 생각”

소설가 김주영 씨(71)의 신작소설 ‘빈집’은 타고난 이야기꾼인 그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시장통의 소란과 번잡함, 술 한잔을 앞에 두고 흘러나오는 한탄, 냉혹하면서도 쓸쓸한 삶을 묵묵히 견디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살내음이 물씬하다. 한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뤘음에도 생생한 캐릭터들과 이들의 정처없는 방랑 등 이야기는 선 굵게 이어진다.

‘객주’ 등 장편 역사소설을 제외하면 김 씨는 ‘홍어’ ‘멸치’ 등 주로 자전적인 요소가 가미된 가족 이야기를 써왔다. 8년 만에 새 장편소설을 선보인 그와 23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명작, 고전소설이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요즘 젊은 작가들이 쓴 소설도 결국은 가족 이야기”라며 “사람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 다시 가족이 나오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빈집’은 형사에게 쫓겨다니는 노름꾼인 아버지, 남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어린 딸을 매질하고 구박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소녀 어진의 성장기가 주축을 이룬다. 소설에는 남편이자 아버지인 한 남자를 매개로 가족이란 테두리에 얽힌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전처와 배다른 자매, 어머니와 딸…. 하지만 이 관계 어디에도 온전한 결속감과 신뢰는 없다. 어진은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결혼을 하게 되지만 새로 꾸린 가정 역시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지 못한다.

“지금까지 가족 소설을 쓸 때는 전통적인 가정의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을 등장시키려고 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갈등구조를 복잡하게 했습니다. 결속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사랑을 갈구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가족이 와해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가족이 있지만 사랑이 없고, 집이 있지만 적막하다. ‘빈집’을 통해 결속감 없는 가족들의 쓸쓸한 삶을 그려낸 소설가 김주영 씨. 사진 제공 문학동네
가족이 있지만 사랑이 없고, 집이 있지만 적막하다. ‘빈집’을 통해 결속감 없는 가족들의 쓸쓸한 삶을 그려낸 소설가 김주영 씨. 사진 제공 문학동네
가족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이 달라진 것은 우리 사회 가족의 모습에 대한 회의감을 반영한다. 그는 “세대가 흘러가면서 가족에 대한 인식, 가족 서로 간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한 집에 살면서도 아버지 직업이 뭔지, 아들이 밖에서 뭘하는지 모르는 이들이 많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가족을 가족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서로 괴리돼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가 보는 오늘날 가족의 모습은 “집은 있지만 사랑이 배제됐고 응집력이 사라진 곳”이다. 그래서 사람이 있건 없건 그곳은 ‘빈 집’과 마찬가지다. 그는 “요즘의 가족은 그저 밥을 함께 먹고 같은 집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 정도의 의미“라며 ”대부분의 가족들이 원래 그래야 하는 가족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이 소설을 연이어 폭설이 내렸던 지난해 겨울, 강원 산골의 작은 집에서 썼다. 5년 전 담배를 끊은 이후로 집중력이 떨어져서 긴 글을 쓰지 못하고 있던 중,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작정을 하고 산골로 들어간 것이라 한다. 그는 “다시 소설을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책으로 ‘시동’이 걸린 셈이니, 앞으로는 오래 쉬지 않고 2년 정도에 한 권씩 장편을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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