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안톤 체호프를 좌절시킨 작품? 그래도 재밌기만 한 걸…

  • Array
  • 입력 2010년 4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는 스물아홉 살(1889년)에 발표했던 한 희곡작품을 봉인한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이 희곡의 출판과 공연을 일절 금지시킨 것이다. 이 작품을 연극화한 뒤 쏟아진 평단의 혹평에 대한 충격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작품의 제목엔 그에 걸맞은 귀기(鬼氣)가 서려 있다. ‘숲귀신’. 체호프 스스로 실패작으로 간주하고 봉인한 이 작품이 국내에서 그 봉인을 깨고 실체를 드러냈다.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국내 초연 무대를 펼치고 있다. 2004년 체호프 4대 장막전을 펼쳤던 뚝심의 연출가 전훈 씨가 번역과 연출을 맡았다.

작품 내용은 체호프의 4대 희극 중 하나로 꼽히는 ‘바냐 아저씨’(1897년)와 흡사하다. ‘바냐 아저씨’는 시골 영지에서 조카 소냐와 함께 농사를 짓고 살던 주인공 바냐가 시골로 내려온 매부 세레브랴코프 교수와 그의 후처 옐레나와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질투와 환멸의 드라마다.

‘숲귀신’에서 세레브랴코프(박웅)와 옐레나(김희진) 부부와 소냐(박묘경)는 이름까지 똑같이 등장한다. 옐레나를 짝사랑하는 바냐는 이고르(류태호)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의사이면서 산림파괴를 막으려 동분서주해 ‘숲귀신’이란 별명을 지닌 흐루쇼프(최원석)는 ‘바냐 아저씨’의 아스토르프에 해당한다.

다만 ‘숲귀신’에는 등장인물이 훨씬 많은데 이들 캐릭터가 묶여서 ‘바냐 아저씨’의 등장인물로 압축된 느낌이다. 예를 들어 ‘숲귀신’의 우아한 소냐와 그 소냐를 짝사랑하는 부잣집 도련님 졸투힌(황찬호)의 생활력 강한 여동생 율랴(가득히)가 합쳐 ‘바냐 아저씨’의 소냐가 되는 식이다. 이는 체호프가 ‘숲귀신’의 실패 후 8년간 절치부심 끝에 ‘바냐 아저씨’로 개작해 발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적 농축도에 있어선 ‘바냐 아저씨’가 앞서지만 카니발과 같은 연극적 재미에선 ‘숲귀신’이 더 변화무쌍하다.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주인공에서 갈린다. ‘바냐 아저씨’에선 실의에 빠진 바냐가 주인공이다. 극 종반 바냐는 권총 자살을 기도했으나 살아난다. 반면 ‘숲귀신’의 이고르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흐루쇼프가 극을 이끈다.

흐루쇼프는 ‘바냐 아저씨’의 아스토르프보다 좀 더 열정적이고 그만큼 더 코믹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 자신 의사였고 톨스토이주의자였던 젊은 날의 체호프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내 연극은 본질적으로 코미디”라고 했던 체호프의 일갈을 헤아릴 수 있게 하는 원형적 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소냐가 그의 사랑 고백을 받고 기쁨을 주체 못한 나머지 사상문제를 슬쩍 건드리는 말실수를 하자 앙앙불락하는 흐루쇼프의 모습이나 셰익스피어의 로맨틱 코미디를 떠올리게 하는 후반부 희극적 구성이 그렇다. 2만∼3만 원. 02-596-0601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