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 안되면 버티지 못하는 세상…오현종 씨 신작 ‘거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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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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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뿔
사진 제공 뿔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제목 그대로 속물적이다. 졸업이 다가오자 배우자감을 물색하기 위해 돌연 대형 교회에 착실히 나간다거나 일종의 보험으로 ‘감자’같이 생긴 의대생 남자친구를 참고 사귄다. 외모와 옷차림, 사는 곳을 바탕으로 인간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남자들 역시 마찬가지고 유산을 상속받기 위한 동기간의 치열한 신경전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이들의 철저히 계산된 속내와 위악적인 행동들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가 오현종 씨는 최근 발표한 장편소설 ‘거룩한 속물들’(뿔)에서 속물이 되기를 자처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권하는 우리 사회의 풍속도를 세밀하고 흡인력 있게 그려낸다. 24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집필동기에 대해 “현진건의 단편 중에 ‘술 권하는 사회’란 것이 있었지만 요즘은 ‘속물 권하는 사회’인 것 같다”며 “작가로서 이 사회의 속물성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소설은 여대 사회복지학과에 다니는 여대생 기린과 그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업 실패 뒤 대리운전 기사로 근근이 살면서도 이른바 ‘SKY’ 대학을 졸업한 아버지는 자신을 곧 죽어도 ‘중산층’이라고 믿는다. 전공과는 달리 사회 복지에 큰 관심이 없는 기린은 돈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 위해 과외를 몇 탕이나 뛰면서도 ‘빈티’만은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친구들이 그런 자신을 몰래 비웃고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있으면서도 없는 척,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이들의 속물성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팽팽하게 얽혀든다. 왕년의 나이트 죽순이에서 결혼 재테크 성공으로 인생을 역전시킨 사촌언니, 사는 지역을 따져가며 연애 상대를 만나는 주식 동아리 회장 등 다채로운 등장인물은 재미를 배가시킨다. 작가는 “자본주의 문화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으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대인 만큼 이들을 통해 패배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오늘의 20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이처럼 속물근성이 만연한 현실만 질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 환경과 삶의 애환을 함께 가늠하게끔 한다. 작가는 “정답은 없겠지만 미디어에 의해 주입된 욕망, 가치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과 꿈을 따라가는 것만이 대안을 찾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주인공인 기린 역시 종국에는 이런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한 단계 성장해 간다.

소설의 제목은 김수영 시인의 산문 ‘이 거룩한 속물들’에서 따왔다. 속물성을 마치 종교처럼 떠받드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꼬집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완벽한 속물’조차 될 수 없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는 제목이다. 작가의 말처럼, “대부분의 우리들은 회의하고 고통받고 외로워하는 어설픈 속물들”임을 깨닫게 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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