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품은 역사의 뿌리 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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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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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통찰서 펴낸 강판권 교수
“나무를 재료 아닌 생명체로 대해야”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사무실 주변이나 동네 공원에 있는 나무를 세어 본 적이 있으세요?”

강판권 계명대 교수(49·사학·사진)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이 질문에는 나무 하나 하나를 개별적인 생명체로 인식하는지를 묻고 싶은 강 교수의 속마음이 담겨 있다. 주변에 있는 나무의 수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나무를 사람 대하듯 온전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 교수는 대구의 계명대 캠퍼스 163만9000여 m²(약 50만 평)에 있는 나무를 1년에 걸쳐 다 세었다.

중국 청대의 농경제사를 전공한 강 교수는 전공 덕분에 사학자이면서 자연스럽게 나무와 가까워졌다. 10여 년 전부터는 나무를 통한 역사와 문화 읽기에 전력을 쏟으며 ‘나무 인문학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런 강 교수가 나무에 얽힌 인문학적 이야기를 담아 최근 ‘역사와 문화 읽는 나무사전’(글항아리)을 출간했다. 113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충남 예산의 추사 김정희 고택 근처에는 백송(白松)이 한 그루 서 있다. 1810년 20대의 추사가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갔다 돌아오면서 몰래 가져온 솔방울에서 자란 나무다. 그냥 보면 하얀 껍질의 소나무에 불과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되면 나무에 응축돼 있는 역사의 시간을 실감하게 된다. 또 회화나무는 주나라 때부터 ‘학자의 나무’로 받들어졌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서원과 같은 유교 관련 유적지에 많이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강 교수는 이 책에 대표적인 나무 217종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담았다. 나무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이름의 유래를 최대한 파악해 실었다. 이를 위해 ‘사시찬요(四時簒要)’ ‘농상집요(農桑輯要)’ ‘산림경제(山林經濟)’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와 같은 조선시대 서적뿐만 아니라 기원전 2세기 주나라 때 만들어진 낱말풀이사전 ‘이아(爾雅)’, 한나라 때 농서인 ‘범승지서(氾勝之書)’, 중국의 가장 오래된 농업기술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 등 중국 문헌도 함께 뒤졌다.

강 교수는 “아직도 수목원이나 식물원에 가면 나무의 약리적 효과만 부각한 안내판을 보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인류가 나무를 약이나 집의 재료로 바라보는 시각은 200여 년에 불과하고 그 이전 약 3억5000만 년 동안 나무를 생명으로 대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전화 인터뷰를 한 2일에도 중국 후베이(湖北) 성 우한(武漢)에서 중국의 나무를 관찰하는 생태 답사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참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계명대의 나무는 몇 그루인가요.” 그가 답했다. “한 그루도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모두 옮겨 심었기 때문이란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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