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이상한 작품이 왜 위대한 예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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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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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4월 14일까지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이 열린다. 사진 제공 마로니에북스
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4월 14일까지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이 열린다. 사진 제공 마로니에북스
◇현대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김영숙 지음/216쪽·1만3000원·마로니에북스

다다이즘 예술가 한스 아르프의 작품 ‘우연의 법칙에 따라서 제작된 콜라주’를 만드는 3단계. 종이를 아무렇게나 잘라 바닥에 떨어뜨린다. 그대로 캔버스에 붙인다. 제목을 짓는다.

치열한 창작열도, 불타는 노력도 눈에 띄지 않는다. 과연 이런 것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현대미술이 난해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자는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뒤샹 등 예술의 경계와 미(美)의 기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던 현대미술가들을 책 속에서 다룬다. ‘나라도 그릴 수 있겠다’ 싶은 작품들이 왜 위대한 예술로 평가받는지를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워홀의 작품이 훌륭한 이유를 현대사회의 단면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에게 현대사회는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가상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 대량생산으로 원본성과 고유함이 사라진 시대였다. 당대의 아이콘이었던 메릴린 먼로의 복제(사진)를 또다시 복제한 워홀의 작품에는 보드리야르가 말했던 ‘가상이 실재를 누르는 현대사회’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피카소의 작품 중 ‘황소의 머리’라는 오브제가 있다. 역삼각형 머리에 두 개의 뿔,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 작품의 진면목은 재료에서 드러난다. 쓰레기장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자전거에서 안장과 핸들을 떼어내 황소 머리 모양으로 붙인 것이다. 저자는 피카소가 “도구의 역할을 벗어버린 존재로서의 사물, 혹은 어떤 사회의 쓰임 있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벗어버린 인간 존재 그 자체를 이 작품을 통해 구현했다”고 평가한다.

변기(뒤샹의 ‘샘’), 마그네슘으로 만든 평판(칼 안드레의 ‘마그네슘-마그네슘 평면’)…. 미술관은 예술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런 작품들을 전시해 놓고 권위와 아우라를 제공한다. 마이클 애셔의 ‘포모나 대학 프로젝트’는 이 같은 미술관의 역할을 풍자한 작품이다. 애셔는 대학 갤러리의 내부공간을 네모로 뚫어 바깥 풍경을 전시했다. 그러자 평범하고 일상적인 풍경이 갤러리라는 공간에서는 공연히 멋있는 뭔가로 변신했다. 이 작품은 사서 소장할 수도 없고 다른 곳에서 전시할 수도 없다.

이렇게 발칙하고 ‘막 나가는’ 현대미술가들의 저항은 보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나 저자는 미술가들 역시 현실에 발 담그고 사는 이들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어찌 보면 그들 미술가는 나의 과거와 나의 미래를 함께 담고 있는 거울이다… 내가 알면서도 하기 싫었던 이야기들을, 혹은 내가 몰라서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그들은 그 거울 속에서 끊임없이 해댄다. ‘이게 아니지 않나요?’라고.”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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