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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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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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드로잉 등 109점에 사진-기념품 200여점 망라


‘자화상’
‘자화상’
2009. 12. 12∼2010. 4. 4. 서울시립미술관

‘팝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1928∼1987)은 현대미술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수프 깡통과 콜라병 등 20세기 대중의 소비문화를 ‘원재료’로 사용하고 기계적 기법으로 ‘생산’하는 작업 방식이 예술의 대중화라는 혁명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작품의 독창성과 유일성을 신봉해 온 엘리트 미술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대중적 이미지를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워홀. 12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막이 오르는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은 살아있을 때 이미 전설이 된 거장의 삶과 예술을 꼼꼼하게 되짚는 자리다.

전시는 미국 피츠버그 시 앤디워홀미술관 소장품을 들여온 국내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다. 마이클 잭슨 등 유명 인사의 초상화를 포함해 주요 작품만 109점을 헤아린다. 이 중엔 대학시절 드로잉부터 ‘캠벨 수프 깡통’ ‘브릴로 상자’ 등 워홀 하면 떠오르는 대표작도 있고 추상 이미지를 담은 ‘그림자 시리즈’와 ‘산화(oxidation)’ 페인팅 등 국내에 첫선을 보이는 작품도 있다.

더불어 수집광으로 알려진 워홀의 개인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타임캡슐’에 포함된 사진과 기념물까지 모두 300여 점이 소개된다. 전시는 내년 4월 4일까지. 8000∼1만2000원. 1544-0113

○ 모든 사람을 위한 예술

“기계적인 수단들이 오늘날의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런 새로운 수단들을 사용함으로써 예술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토대로 워홀은 뉴욕 작업실을 ‘팩터리(factory)’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대량생산 제품처럼 같은 이미지가 반복되는 작품을 찍어낸다. 기계복제시대를 상징하는 작품이지만 이미지를 살펴보면 색상과 명암 등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원본의 아우라를 거부하면서도 삶에 반복이 없듯 세상에 완벽하게 동일한 반복이란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전시장은 ‘반복미학’을 중심으로 그의 예술세계 전모를 조망하는 9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달러사인과 꽃 등 일상적 소재를 차용해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문 작품 섹션, 스타가 되기를 열망하면서도 가발과 선글라스로 자신을 은폐한 자화상 섹션, 유명인들의 초상화를 모은 인물 섹션 등은 미술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재미를 선사한다.

워홀미술관이 자랑하는 길이 11m의 ‘회상’, ‘그림자’ 시리즈와 ‘산화’ 등 추상적 경향을 드러내는 기념비적 작품도 나들이를 했다. 1979년 제작한 그림자 시리즈는 그림자와 빛의 작용을 강조한 연작. 산화는 구리 성분의 물감을 입힌 캔버스에 친구들에게 소변을 보게 한 뒤 철 성분이 산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68년 자신의 영화에 출연했던 여인의 총격을 받아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워홀의 ‘해골’ 연작도 눈길을 끈다.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 모리)를 반영한 작업이다.

가난한 유년시절 워홀이 갖고 싶어 했던 어린이 책을 모은 타임캡슐 섹션, 그가 프로듀서를 맡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연주와 영상작업을 선보인 ‘워홀 라이브’ 섹션도 워홀 마니아에겐 매혹적 공간이다.

○ 모든 이를 위한 전시

일상과 대중문화에 뿌리내린 팝아트의 선구자 워홀. 순수와 응용미술, 고급과 저급미술의 경계를 단숨에 부순 그의 예술은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사랑받고 있다. 평론가 윤진섭 씨는 “그는 고상한 미술에 저항함으로써 대중 눈높이로 예술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팝아트의 선구자”라며 “추상표현주의가 현대미술을 대표했던 시절, 팝의 전위정신으로 엄숙하고 형이상학적이던 미술을 땅으로 끌어내렸다”고 평했다.

“나는 상업미술가로 출발했으며 사업예술가로 마치기를 기대한다. 돈을 버는 것도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사업을 잘하는 것은 최고의 예술이다.”

이런 말을 남긴 워홀은 진정한 천재예술가인가, 천재사업가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전시를 보면 해답이 나온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카피라이트 앤디워홀재단·CMG월드와이드
▼스타 초상화 하나하나 합치면 커다란 ‘사회의 초상화’ 한편이…▼

메릴린 먼로, 잉그리드 버그먼 등 영화배우와 비틀스, 마이클 잭슨 같은 20세기 슈퍼스타의 초상화가 즐비하다. 마오쩌둥과 아인슈타인 등 역사적 인물의 초상화도 볼 수 있다.

전시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인물전 섹션. 1970년대 초반부터 앤디 워홀은 초상화를 의뢰하는 사람을 만나 작품을 제작하는 시스템을 가동했다. 이에 대한 비난도 많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돈과 명성을 열망했던 그에게 알아둘 가치가 있는 인사를 만나는 일은 즐거움이자 수입에도 보탬이 됐기 때문. 서울에 온 마이클 잭슨의 초상화도 1984년 3월 19일 ‘타임’의 커버스토리를 위해 의뢰받아 제작했다. 잭슨 사망 이후 또 다른 잭슨 초상화는 경매에서 100만 달러를 넘는 금액에 팔리기도 했다.

제작 과정을 보면 워홀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이용해 인물을 찍은 뒤 한 컷을 선택한다. 그 다음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세리그래피 기법으로 이미지를 덧입혀, 사진을 이용한 회화작품을 완성했던 것. 한데 왜 많은 초상화들이 산업제품처럼 같은 크기(40×40인치)로 제작된 것일까?

“나의 모든 초상화들은 같은 사이즈로 제작된다. 그래서 그것들을 모두 합쳐 ‘사회의 초상화’라 불리는 커다란 하나의 그림을 만들 것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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