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의사 의거로 천주교도 현실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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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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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연구소’ 신운용 소장
“신은 평화 원한다는 신념 실천”

“천주교 신자로서 안중근 의사는 신이 한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원한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것은 종교관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16년간 안중근 연구에 매진한 결과를 ‘안중근과 한국 근대사’에 담아낸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연구소의 신운용 소장(사진). 그는 24일 나온 이 책에서 천주교 신자로서의 안중근에 주목했다.

신 소장은 독립운동과 동떨어져 종교생활에만 치중하던 한국 천주교가 역사의식을 갖고 현실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안 의사의 의거였다고 분석했다. 그는 “안 의사 의거 후 천주교 내에 처음으로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기류가 형성됐다”며 “안 의사는 제각각 존재하던 천주교의 역사관과 종교관을 주체성 아래 일치시킨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신 소장은 1907년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가려는 안 의사를 신부들이 만류하자 안 의사가 ‘종교보다 국가가 먼저’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은 종교인다운 행동과 거리가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신 소장은 “안 의사는 유언 말미에 ‘천당에서 만나자’는 말을 여러 차례 썼다”며 “신의 뜻에 따른 사역에 종사했다는 의식만 있었지 살인을 했다는 인식은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 소장은 일부에서 안 의사의 한계로 지적하는 다른 사항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안 의사가 공판에서 “러일전쟁 전에는 독립운동을 할 생각이 없었다”고 진술한 것을 근거로 한때 일제에 긍정적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1895년) 직후 백범 김구가 의병을 일으키기 위해 안 의사의 집에 기거할 때 이를 가까이서 지켜봤고,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첫 번째 이유로 국모 시해를 든 것으로 볼 때 을미사변 이후 일제에 반감을 키워왔다고 보는 게 옳다”고 설명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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