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나쁜 남자’ 호동, 관객을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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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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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발레단 ‘왕자, 호동’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국립발레단 ‘왕자, 호동’의 프레스콜. 호동왕자(이동훈)와 낙랑공주(김지영)의 설화를 서양 무용인 발레로 녹였다. 사진 제공 국립발레단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국립발레단 ‘왕자, 호동’의 프레스콜. 호동왕자(이동훈)와 낙랑공주(김지영)의 설화를 서양 무용인 발레로 녹였다. 사진 제공 국립발레단
18∼2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발레단(단장 최태지)이 초연한 ‘왕자, 호동’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전통 설화를 서양 무용인 발레로 녹인 작품이다. 국립발레단의 ‘2009 국가대표 프로젝트 1탄’으로 내건 만큼 앞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발레상품으로 커갈 수 있을지 시험하는 자리로서의 의미도 컸다.

전 2막으로 나뉜 무대는 첫 장부터 낙랑과 고구려의 전쟁을 표현한 군무로 객석을 압도했다. 창과 방패를 든 무용수 28명으로 표현한 스펙터클한 전쟁 장면에서 무용수들의 깔끔한 기량과 군더더기 없는 구성이 돋보였다. 낙랑국의 사냥 장면에서 5명이 칼춤과 활 춤을 추는 장면은 전통무예와 발레가 고루 섞여 갈채를 이끌어냈다.

1막 전쟁 장면에 이어지는 2막은 호동과 낙랑의 사랑이 주요 테마다. 결혼식 장면에서 선보인 위구르족 한족 등 다양한 민족의 축하 춤이나 침실에서 호동과 낙랑이 사랑을 표현하는 농염한 몸짓이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신선희 감독이 연출한 무대는 배경을 장식한 직물이나 계단만으로 웅장함을 표현해냈다. 한편 서양 클래식과 전통음악이 혼합된 음악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지만 이따금 발레 동작과 정밀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아 아쉬움을 줬다.

20일 낙랑공주 역으로 국내 데뷔한 발레리나 박세은 씨는 새치름한 모습이 사랑을 막 시작하는 공주 역할에 적역이었다. 가늘고 긴 팔다리가 섬세한 곡선을 빚어냈고, 발걸음은 토슈즈를 신지 않은 듯 가뿐했다. 반면 조국과 사랑 사이에서 결국 남자를 택한 낙랑의 내면 연기는 김지영 씨가 돋보였다. 자명고를 찢은 뒤 아버지 최리왕에게 죽임을 당하는 낙랑, 그녀를 두 손으로 번쩍 든 채 계단을 오르는 호동, 그 위로 붉은 꽃잎이 흩날리며 호동이 자결하는 장면은 서양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부럽지 않은 명장면으로 꼽을 만했다.

사랑을 나눈 후 떠나는 호동 뒤에서 낙랑이 옷을 덮어주며 껴안는 장면이나 자명고를 찢으라는 호동의 당부가 적힌 커다란 천 편지를 온몸에 휘두른 채 오열하는 모습도 관객들의 가슴을 짠하게 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사랑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나쁜 남자’ 호동이 낙랑을 따라죽으며 갑자기 ‘로맨티시스트’가 되는 장면은 이 복잡한 감정의 선들을 갑자기 생략해버리는 느낌이었다. 호동 내면의 번민이 더 세심하게 그려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문화부 염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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