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역사를 깨워라” 不惑의 외길…국립문화재연구소 설립 40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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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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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왕비의 금제 관장식 등 2900여 점의 유물이 나온 충남 공주의 무령왕릉, 금관을 비롯해 각각 1만여 점과 2만2000여 점의 유물이 나온 경북 경주의 천마총과 황남대총, 41개의 다양한 고분이 한 곳에서 확인된 전남 나주의 복암리 3호분….
한국 고대사의 비밀을 밝혀낸 발굴들이다. 잠들어 있는 역사를 깨워온 지 40년. 국내의 주요 발굴을 주도해 온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가 17일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1969년 출범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고고 미술 건축 무형문화재 천연기념물 등 문화재의 모든 장르에서 연구 조사 및 보수 복원 업무를 맡고 있다.》
천마총-미륵사지 등 발굴
고대사 미스터리 밝혀내
무형문화재 복원 업무도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대표적인 발굴 10건을 선정했다. 10건의 발굴은 △공주 무령왕릉(1971년) △경주 천마총(1973년) △경주 황남대총(1973∼1975년) △경주 안압지(1974∼1975년) △경주 황룡사터(1976∼1983년) △경주 신라왕경(1987년∼현재) △서울 풍납토성(1997년∼현재) △전북 익산 미륵사터와 석탑(1980년∼현재) △경남 함안 성산산성(목간 발굴·1991년∼현재) △나주 복암리 3호분 발굴(1996∼1998년) 등이다.

공주 무령왕릉은 1971년 7월 공주 송산리 5, 6호분 배수로 공사 도중 우연히 발견됐다. 이곳에선 백제사의 비밀을 밝혀줄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까지 발굴된 고대 고분 가운데 주인공이 밝혀진 유일한 고분. 그러나 당시 이렇게 엄청난 고분을 발굴해 본 경험이 없어 하룻밤 사이에 서둘러 유물을 수습하는 오점을 남겼다.

무령왕릉의 뼈아픈 경험을 거울삼아 1973년 천마총 발굴은 치밀하게 진행됐다. 이곳에선 신라 금관과 각종 금제 장신구를 비롯한 황금유물, 천마도 장니(말의 안장에 달아 늘어뜨리는 도구) 등 신라 유물 1만여 점이 출토됐다.

황남대총에서도 황금유물이 쏟아졌다. 5세기 전후에 축조된 황남대총은 남북 120m, 높이 23m로 국내에서 가장 큰 고분. 표주박 모양의 부부 묘다. 신라의 금관 금동관을 비롯해 각종 황금 장신구 등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흥미로운 점은 왕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무덤에서 금동관이 나오고 왕비(추정)의 무덤에서 이보다 급이 높은 금관이 나왔다는 사실. 발굴 34년이 지났지만 이는 여전히 황남대총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1970년대 이후 신라 고도 경주에선 끝없는 발굴이 이뤄졌다. 통일신라의 대표적 연못 정원이었던 안압지, 삼국시대 최대 사찰로 80m 높이의 9층 목탑이 있었던 황룡사터, 왕경 등을 발굴함으로써 신라의 도시건축 문화와 일상생활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주 복암리 3호분은 발굴 기간 내내 고고학자와 고대사학자들을 흥분과 미스터리로 몰아넣었던 고분이다. 이 고분은 사다리꼴 모양에, 한 변의 길이가 약 40m로 41개의 크고 작은 온갖 종류의 무덤들이 3층으로 켜켜이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일종의 아파트형 무덤으로, 이런 특이한 모양은 한반도에서 유일하다.

서울 풍납토성 발굴은 유적 보존을 놓고 주민들과 발굴단이 심각한 갈등을 겪었던 경우다. 또한 한성시대 백제의 왕궁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놓고 다시 한번 논란에 불을 지핀 발굴이기도 했다.

익산 미륵사터에서 진행 중인 석탑 해체 발굴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초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미륵사 창건 주체와 관련해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내놓아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내용의 사리봉안기. 서동 왕자였던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 공주가 결혼해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믿음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백제사가 새로 써지고 있는 것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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