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삶도 건축도 목숨건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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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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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완공한 일본 가가와 현 나오시마의 지추미술관. 외관 없이 지하에 파묻힌 건물이다. 안도 다다오 씨는 월터 드 마리아 등 예술가들과 협의해 전시작품과 공생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사진 제공 안그라픽스
2004년 완공한 일본 가가와 현 나오시마의 지추미술관. 외관 없이 지하에 파묻힌 건물이다. 안도 다다오 씨는 월터 드 마리아 등 예술가들과 협의해 전시작품과 공생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사진 제공 안그라픽스
공고 졸업… 프로복서… 독학
세계적 건축가로 우뚝 선
안도 다다오의 자서전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안도 다다오 지음·이규원 옮김/428쪽·2만 원·안그라픽스

안도 다다오 씨
안도 다다오 씨
안간힘. 진검승부. 게릴라. 임전(臨戰). 각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 씨(68)가 생애 첫 자서전의 서장에서 강조한 단어들이다.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해 공고 졸업 학력으로 도쿄대 교수 자리에 오른 인물. 첫 직업은 프로복서였다. 스타 선수를 만나 재능 부족을 깨닫고 글러브를 벗었지만 건축의 링 위에서 그는 계속 치열하게 싸우면서 살아왔다.

지난해 9월 서울 초청강연회에서 만난 안도 씨는 눈을 거의 깜박이지 않고 상대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간결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잠깐 신중하게 생각한 뒤 대나무 쪼개듯 막힘없이 쏟아내는 화법이 글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쭉쭉 뻗는 스트레이트처럼 자신의 삶을 시원스럽게 써내려갔다.

안도 씨는 “1979년 일본건축학회상을 받은 오사카의 ‘스미요시 나가야(長屋·밀집지역의 소형 주택)’가 내 건축의 원점”이라고 썼다. 이 건물은 앞면 3.6m, 측면 14.4m의 노출콘크리트 박스형 2층집이다. 어른 둘이 팔을 벌리고 나란히 서면 양쪽 벽에 손이 닿는 공간. 하지만 스미요시 나가야는 ‘좁은 집’이 아니다.

공간 구성은 단순하다. 길쭉한 직육면체를 3등분한 다음 위아래를 나눠 6개의 공간을 만들었다. 여기서 2개의 가운데 공간을 ‘버림’으로써 이 집은 특별해졌다. 안도 씨는 가운데 부분의 지붕을 없애고 옥외 통로와 정원을 만들었다. 비가 오는 날 출입구 쪽 방에서 안쪽 방으로 가려면 우산을 써야 한다.

신축 당시 이 건물을 소개한 일본 건축 잡지는 ‘결코 일반적인 답은 될 수 없는 집’이라고 평가했다. 건축가가 자기 취향 때문에 집 주인에게 번거로움을 강요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설계를 의뢰하고 돈을 지불한 아즈마 씨 부부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이 집에서 편안히 살고 있다.

하늘 맑은 오후 스미요시 나가야의 뜰에 나와 서면 가운데 공간을 버려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빛과 바람, 눈과 비와 낙엽이 정원을 무한히 확장한다.

“주어진 장소에서 살아나가는 데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생활이야말로 주거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빽빽한 도시 속에서 힘겹게 분투하며 살아가지만 안이하게 타성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각오가 담긴 설계다. 안도 씨는 2003년 세토나이카이의 폭 5m 정사각형 땅에 지은 집에도 위층 거실에 넉넉한 ‘공백’을 마련해 바다와 하늘을 끌어들였다.

그는 한국 번역본 머리말에서 “힘겨운 시대를 살아 내는 데 필요한 것은 완강한 의지와 정열을 가진 개인의 충돌과 대화”라며 “쓰러졌다가 일어나기를 거듭해 온 이 무뚝뚝한 자전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인생에 용기를 가져준다면 좋겠다”고 했다.

“권투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격투기다. 목숨을 걸고 고독과 영광을 한 몸으로 감당한다.… 타인의 돈으로 그 사람 평생에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건물을 지어 주는 일에는 그에 걸맞은 각오가 있어야 한다.”

건축가 안도 씨의 전적은 50년 전 멈춘 23전 13승 3패 7무의 기록 뒤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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