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역사속의 그들, 역사를 얼마나 악용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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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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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피해자’ 부각시키며
전쟁 배상책임 회피한 日

“미국 남부엔 노예 없었다”
19세기말 백인중심 교과서
19세기 초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 쟁탈전을 풍자한 만화. 프랑스의 나폴레옹(오른쪽)과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피트가 세계 지도가 그려진 거대한 푸딩을 자르고 있다. 영국의 몫이 더 큰 것이 눈에 띈다. 이 시기의 제국주의는 훗날 피해 보상과 과거사 청산을 둘러싸고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논쟁을 낳았다. 일러스트 제공 공존
19세기 초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 쟁탈전을 풍자한 만화. 프랑스의 나폴레옹(오른쪽)과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피트가 세계 지도가 그려진 거대한 푸딩을 자르고 있다. 영국의 몫이 더 큰 것이 눈에 띈다. 이 시기의 제국주의는 훗날 피해 보상과 과거사 청산을 둘러싸고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논쟁을 낳았다. 일러스트 제공 공존
◇역사사용설명서/마거릿 맥밀런 지음·권민 옮김/288쪽·1만5000원·공존

《“역사는 인간의 가치관, 두려움, 염원, 사랑, 미움을 형성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과거의 힘을 이해하게 된다.

심지어 사람들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조차 주로 과거에서 전범(典範)을 가져온다.”

영국 옥스퍼드대 세인트앤터니스칼리지 학장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가 역사를 이용해 온, 혹은 악용해 온 사례를 통해 때로는 ‘역사관’이 역사 그 자체보다 더 역사의 이해에 개입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저자는 자신을 피해자로 설정하는 것을 역사를 이용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꼽는다.》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은 “우리(세르비아)는 언제나 짓밟히고 억압 받았다”고 말하곤 했다. 그의 결론은 늘 “보스니아의 끔찍한 이슬람인들에게 맞서 싸워야 한다”였다. 이 주장은 세르비아인을 집결시켰고 밀로셰비치의 집권을 연장시켰다. 그러나 이 민족주의적 역사관은 결국 인종청소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치욕의 세기’라는 용어를 통해 ‘피해자 중국’을 강조하며 현재 중국이 직면한 문제를 비켜가기도 한다. ‘치욕의 세기’는 1840년 1차 아편전쟁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이러한 역사를 내세우며 중국은 “서양 국가들은 근대 중국이 겪은 각종 불평등과 피해에 책임이 있다. 그러니 중국 내 인권 문제나 티베트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일본도 제2차 세계대전 때 입은 원폭 피해를 부각시켜 자신을 전쟁의 피해자로 설정한 뒤 아시아 국가에 대한 배상책임을 회피하기도 했다.

때로는 역사가 신화로 변하기도 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까지 미국 남부에서는 백인이 역사교육을 장악했다. 이들에게 남부는 신사와 숙녀의 고장이었다. 이 시기 남부의 아이들은 노예제도와 인종주의가 거의 없다고 묘사된 남부의 역사를 배우며 자랐다. 1960년대 평등권 운동이 일어난 뒤에야 이 신화는 깨지기 시작했다.

신화로 변한 역사는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이용된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의 지도자였던 샤를 드골은 나치에 동조했던 비시 정권과 관련해 “없었던 일이고 의미도 없다”고 선언했다. 전쟁에 대한 반성은 ‘극소수의 프랑스인’에 대한 처벌로 끝났다. 드골의 군대와 레지스탕스가 진정한 프랑스의 대변자로 부각됐다. 프랑스 경찰이 유대인 체포에 적극적이었고 비시 정권의 관리들이 1945년 전쟁이 끝난 뒤에도 자리를 보전했다는 사실은 잊혀졌다. 그 대신 프랑스는 전쟁의 상처를 묻고 국가의 재건을 위해 단결할 수 있었다. 프랑스는 20세기 말이 돼서야 홀로코스트에 부역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호주의 케빈 러드 총리는 2008년 원주민들에 대한 차별정책을 사과했다. 사과를 끝까지 거부한 존 하워드 전 총리가 낙선한 뒤였다. 그러나 실업, 알코올의존증, 아동학대, 문맹 등 현재 원주민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한 원주민 지도자는 이 사과를 두고 “원주민은 말이나 듣고, 백인은 돈을 틀어쥔다”고 냉소적으로 평했다.

그렇다면 역사를 전혀 모르는 것이 차라리 나을까. 저자의 답은 “아니요”다. 저자는 냉전기의 갈등이 극한까지 치달았던 것은 서로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수도를 보호하기 위한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데 골몰해왔다. 스탈린도 실질적으로는 방어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미국이 이런 역사를 알았다면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옛 소련의 화법은 과장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역사사용법은 역사를 이용하고 즐기되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 역사가들도 이를 위해 통념에 도전하고 대중에게 정확한 역사 지식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집단의 입맛에 맞는 억측에 이의를 제기하는 역사는 고통스럽다. 하지만…이것은 성숙함의 징표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말은 역사의 남용이나 오용을 막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원제는 ‘The uses and abuses of history’(2009년).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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