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도 예술이 되네… 英마틴 크리드 서울전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영국의 현대미술가 마틴 크리드 씨의 ‘작품번호 960번’. 그는 사물을 반복적으로 배열하는 단순한 방식을 통해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결과를 주목하게 만든다. 사진 제공 사무소
영국의 현대미술가 마틴 크리드 씨의 ‘작품번호 960번’. 그는 사물을 반복적으로 배열하는 단순한 방식을 통해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결과를 주목하게 만든다. 사진 제공 사무소
천장의 조명은 켜졌다 꺼지기를 되풀이하고 검정 커튼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한다. 작은 공처럼 둥글게 뭉친 종이도, 펜으로 색칠한 종이도 있다. 빈 포장 상자를 차곡차곡 포개놓고, 선인장 화분은 키 순서대로 서있다. 벽 모서리에는 ‘Don't Worry’라는 네온문자가 붙어있고 각목과 합판도 높이 쌓여 있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구토하고 ‘큰 일’ 보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영국의 현대미술작가 마틴 크리드 씨(41)의 국내 첫 개인전이다. 텅빈 공간에서 전등이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작업으로 2001년 영국 최고의 미술상인 터너상을 수상한 그의 작품세계를 두루 볼 수 있다. 얼핏 황당하게 보이는 작업이지만 전시에 맞춰 내한한 작가의 진솔한 설명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는 예술이 뭔지 잘 모른다. 내가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 삶을 흥미롭게,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시도하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그를 ‘최소한의 작업으로 최대한의 사유를 이끌어내는 개념미술 작가’라고 평하지만 작가의 말은 다르다. 자신은 개념과 의미를 미리 생각하는 게 아니라 즉흥적으로 뭔가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 일상적 사물, 인간의 행위, 메커니즘의 양면성을 다루는 그의 ‘작품’은 상상력과 독특한 유머가 스며 있으면서도 소박하고 단순하다. 수선스럽고 충격적인 볼거리를 쏟아내는 ‘스펙터클의 시대’에 되레 돋보이는 이유다.

예컨대 구토에 대한 영상은 인간이 생각하지 않고 창조하는 행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궁리하다 나왔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하고 나면 후련하다는 점에서 창작에 대한 은유도 담겨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일 모두가 창조적 행위다. 난 단지 그것을 전시장에서 보여주기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작업을 심오하게 포장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 그는 작품에도 제목 없이 일련번호를 매긴다. 2008년 테이트미술관에서 사람들이 30초씩 전력질주해 화제를 모았던 ‘달리기’는 850번, 현재 1020번까지 나가 있다.

생활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무것도 아닌 것, 동시에 특별한 것을 만드는 작가. 전시를 보고 나면 소소한 일상도 문득 다시 바라보고픈 생각이 든다.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모든 행위와 진부하게 치부한 일상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마음. 예술이라 부르든 말든 이런 것이 우리 인생에 지문을 찍는 행위란 것을 일깨우는 전시다.

내년 2월 12일까지. 1500∼3000원. 02-733-8945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