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맨얼굴’ 20선]<20>짧은 영광, 그래서 더 슬픈 영혼

  • 입력 2009년 10월 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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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영광, 그래서 더 슬픈 영혼/전원경 지음/시공사

《“이제 나는 예술을 넘어서기를 원한다. 감각과 삶 역시 넘어서기를 원한다. 나는 다만 허공으로 뛰어들고 싶다. 내 삶은 1947년 작곡한 내 교향곡과 같았다. 하나의 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그래서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삶…. 훗날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렇게 말해줬으면 싶다. ‘그는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고.”》

요절한 예술가 11인의 극적인 삶

천재와 요절은 비극적이지만 근사하게 어울린다. 범재들이 평생 가도 못 만들 걸작을 젊은 나이에 뚝딱 만들어놓고는 생애를 마친다. 요절이 천재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라고 하면 본인들에겐 가혹하겠지만 일반인에겐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더구나 피폐했던 생활을 정리하고 창작활동에 다시 매진하려는 순간 슬그머니 죽음의 그림자가 그들을 찾아왔다. 그들의 극적인 삶이 영화로, 전기로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11명의 요절한 예술가를 조명했다. 홍콩 영화배우 장궈룽(張國榮), 비틀스, 재즈가수 빌리 홀리데이를 비롯해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에곤 실레, 이브 클랭, 장 미셸 바스키아와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 발레 안무가 바슬라프 니진스키,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 등이다. 대부분 30세 안팎, 길어야 40세 남짓한 생을 살았다. 니진스키는 60여 년을 살았지만 정신병원에 입원한 30세 이후 예술가로서의 삶은 막을 내렸다.

피츠제럴드는 그의 작품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삶을 투영해 개츠비를 창조했다. 둘 다 가난 때문에 연인을 잃고 군대에 입대했다. 개츠비는 밀주를 통해, 피츠제럴드는 소설을 통해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와 사회적 명성을 얻는다. 여봐란 듯 사치스럽고 무절제한 삶을 살다가 거짓말처럼 모든 것을 허망하게 잃어버린다. 개츠비는 총을 맞고, 피츠제럴드는 필생의 작품을 쓰다가 심장발작으로 숨졌다. 한 여성을 향한 집요한 애정 역시 그들을 파멸로 이끈 계기였다.

놀라운 천재성은 그들이 감당하기 쉽지 않은 무게였다.

그들은 술과 마약에 탐닉하거나 우울증 같은 정신병에 걸리거나 심장발작으로 젊은 말년을 불우하게 보내야 했다.

바스키아는 20대 초반 미국 뉴욕에서 거리 페인팅과 낙서 그림으로 인종 차별, 도시 풍경, 만화 주인공 등을 그려 ‘검은 피카소’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23세 때는 앤디 워홀과 공동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런 그는 너무 일찍 찾아온 명성과 백인 화단에 들어온 최초의 흑인 화가라는 부담을 견디지 못했다. 그가 탈출구로 찾은 것은 마약. 그는 1988년 8월 12일 약물(코카인) 중독으로 인한 돌연사로 27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빌리 홀리데이와 모딜리아니는 마약, 장궈룽과 뒤 프레는 우울증, 니진스키는 정신분열증, 피츠제럴드와 클랭은 심장마비가 사인이었다.

그들의 불우한 삶은 그들의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됐다. 홀리데이는 세 명의 남편 모두 그를 구타하고 돈만 뺏는 무능한 남편들이었다. 그가 마약을 배우고 끊지 못했던 것도 남편 탓이었다. 사생아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 괄시받았던 그는 어떤 수모와 괴로움에도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다. 마약에 찌든 말년에 그의 목소리는 전성기에 비해 훨씬 쇠잔했지만 흡인력은 더 강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퇴락했다고도 할 수 있는 빌리 홀리데이의 만년의 노래에서 내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어쩌면 그것은 ‘용서’ 같은 것이 아닐까. ‘이제 그만 됐으니까 잊어버려요’라는.”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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