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볼 수 없는 ‘200억’ 귀하신 몸…오페라의 유령

  • 입력 2009년 9월 24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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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한, 사악하게조차 느껴지는 지하호수. 그 위를 나룻배 한 척이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얼굴의 절반을 보기에도 섬뜩한 가면으로 가린 사내. 사내는 한 여인을 배에 태운 채 노를 저어 느릿느릿 호수를 건넌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대형 샹들리에(무려 1톤이나 된다!)가 13미터 높이의 천장에서 객석으로 곤두박질치는 장면과 함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양대 명장면으로 꼽히는 부분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에 들어가는 대작이다.

‘세계 4대 록 기타리스트’(개인적으로 지미 페이지는 꼭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와 마찬가지로 4대 뮤지컬에 대해서도 논란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오페라의 유령만큼은 부동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 외에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캣츠를 4대 뮤지컬로 친다.

1986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된 오페라의 유령하면 20세기 최고의 뮤지컬 여배우 사라 브라이트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남남이 되었지만 그는 이 오페라의 작곡자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부인(두 번째 부인이었다)이었고, 남편의 강력한 주장으로 여주인공 크리스틴 역을 따낼 수 있었다. 이후의 신화 같은 성공 스토리는 익히 잘 알려져 있으니 패스.

국내에서는 2001년 첫 라이선스 공연이 이루어졌다.

당시 한국판 오페라의 유령은 7개월 동안 무려 24만 명이라는 가공할 관중동원 파워를 과시하며 한국 뮤지컬에 ‘유령바람’을 일으켰다.

그때 그 유령이 8년 만에 돌아왔다. 초연 무대에 두 주역으로 섰던 윤영석(팬텀)과 김소현(크리스틴)도 함께 돌아왔다. 여기에 양준모(팬텀)와 일본 뮤지컬 극단 ‘사계’ 소속의 최현주(크리스틴)가 가세해 폭을 넓혔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오페라의 유령은 ‘날이면 날마다’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무대세트 탓이다.

오페라하우스가 5초 만에 안개 자욱한 지하호수로 뒤바뀌고, 자욱한 안개와 281개의 촛불 사이로 나룻배가 등장하는 순간 관객은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선을 헤매게 된다. 무대를 위해 동원되는 물량은 40피트 컨테이너 20대 분량. 이 무대를 꾸미려면 자그마치 200억원이 넘는 제작비용이 들어간다.

공연 때마다 무대세트를 새로 제작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오페라의 유령 무대는 단 네 곳에서만 가능하다(세트가 네 개 뿐이란 얘기다).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 일본이 장기공연(무려 20여 년이다)을 하고 있어, 다른 나라들은 남은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이렇듯 오페라의 유령은 세계 뮤지컬에서 가장 ‘귀하신 몸’이다. 뮤지컬 팬이라면 이번 한국 공연이 ‘행운’을 뛰어 넘은 ‘대박’ 수준임을 수긍할 것이다. 23일 샤롯데씨어터에서 2009판 오페라의 유령이 드디어 대장정의 첫 발을 뗐다. 클래식 오페라 공연을 능가하는 2시간 40분의 러닝타임이지만 막판엔 분단위로 손가락을 꼽으며 아쉬워하게 된다.

8년의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평일 8시, 토 3·8시, 휴일 2·7시|샤롯데씨어터|문의: 02-501-7888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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