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알고 싶은가? 계단을 걸어보라

  • 입력 2009년 9월 1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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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시대의 계단 양식 중 대표작인 독일 뷔르츠부르크 왕궁 계단(왼쪽)과 고대 로마의 계단 양식을 활용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기차역 지붕. 사진 제공 휴머니스트
바로크 시대의 계단 양식 중 대표작인 독일 뷔르츠부르크 왕궁 계단(왼쪽)과 고대 로마의 계단 양식을 활용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기차역 지붕. 사진 제공 휴머니스트
계단건축 통해 문명사 추적 책 나와

‘높이가 다른 두 곳을 이어 소통과 교류를 가능하게 해주는 발걸음의 수직 이동 수단.’ 영어사전에 나오는 계단의 정의다. 계단은 높낮이가 다른 자연 지형을 인공적으로 정리하는 수단이며, 층과 층 사이를 이어주는 소통의 통로이기도 하다. 동시에 ‘위쪽’ 혹은 ‘하늘’을 향한다는 권력과 종교의 의미가 내재돼 있다.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부 교수가 최근 저서 ‘계단, 문명을 오르다’(휴머니스트) 1, 2권을 통해 고대부터 20세기까지, 서양 건축을 중심으로 계단의 문명사를 들여다봤다.

지구라트와 피라미드 등에서 알 수 있듯 고대의 계단은 신전에 사용되며 하늘을 향한 상승의 열망을 표현했다. 이때의 계단은 인간을 압도할 만한 긴 길이와 중간에 꺾임이 없는 곧은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중간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거나 높이가 낮다면 종교적 신성함과 권위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세에는 계단이 건물 속으로 숨어든다. 나선형 계단이 벽이 두꺼운 성채나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의 벽 안쪽으로 건축되기 시작했던 것. 공간을 적게 차지하고 전쟁 시 방어하기 쉽다는 실용적 이유 때문이었다. 사면이 막혀 있고 조금만 올라가면 시야에서 사라지는 나선형 계단의 은밀함과 폐쇄성은 신의 신비가 인간의 합리성을 압도했던 당시 시대상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이 폐쇄적인 나선형 계단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안팎을 개방하는 개방형 구조로 바뀐다.

임 교수는 바로크 시대의 계단을 가장 흥미로운 계단으로 꼽았다. 인간의 내적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것이다. 발타자르 노이만이 설계한 독일 뷔르츠부르크 왕궁이 대표적이다. 이 왕궁의 계단은 당시 귀족들의 주택 전체 크기와 비교될 만한 웅장함을 자랑한다. 임 교수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하면서도 능가하고 싶었던 당대 독일어권 공국 주인들의 초조함과 욕망이 드러난다”며 “계단 자체는 단순한 쌍유턴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화려한 장식과 천장의 벽화가 돋보인다”고 말했다.

20세기 들어 고층건물이 등장하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발명되면서 오르기 힘든 계단은 기피 대상이 됐다. 그러나 계단은 여전히 다양한 변화를 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함으로써 시각적 즐거움과 만족을 제공하는 건축 부재다.

임 교수는 “고대 로마의 계단 양식을 활용해 시민 휴식 공간으로 만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기차역 지붕 건축 등 서양에서는 계단의 의미를 현대에 되살리려는 노력이 많다”며 “이에 비해 한국 건축가들은 골목길의 아늑한 계단이나 사찰의 계단 등이 있는데도 그 특징을 새롭게 되살려 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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