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노숙인 천재음악가를 위한 인생협주곡

  • 입력 2009년 9월 1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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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새니얼과 스티브의 실제 인연을 소재로 올해 4월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솔로이스트’의 한 장면. 사진 제공 랜덤하우스
너새니얼과 스티브의 실제 인연을 소재로 올해 4월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솔로이스트’의 한 장면. 사진 제공 랜덤하우스
◇솔로이스트/스티브 로페즈 지음·박산호 옮김/400쪽·1만2000원·랜덤하우스

거리에서 누더기를 입은 채 아름다운 바이올린 연주를 펼치던 흑인 노숙인. 그가 발산하는 시각과 청각의 부조화는 마감을 위해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본사로 뛰어가던 로페즈 기자의 동물적인 감각을 건드렸다. 그렇게 해서 이 논픽션이 탄생했다.

조심스럽게 접근해 알아낸 노숙인의 이름은 너새니얼 앤서니 에이어스. 나이는 50대 초반. 초라한 행색에도 행동에는 기품이 있었다. 그러나 너새니얼은 피해망상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세계 유수의 음악학교 줄리아드음악원의 장학생으로 첼로와 바이올린을 연주했었다는 사실이다.

기이한 운명의 주인공을 만난 저자는 너새니얼의 삼촌과 여동생, 스승을 찾아내 그의 운명의 퍼즐을 짜 맞춘다. 1960년대 평범한 흑인 가정에서 자라난 소년은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줄리아드음악원에 입학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줄리아드의 경쟁적인 환경은 그의 정신을 파괴하고 말았다. 그는 거리에서 두 줄밖에 없는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했지만 머릿속에는 여전히 생상스, 모차르트, 브람스, 드보르자크, 하이든, 베토벤의 음악이 있었다.

저자는 너새니얼의 이야기를 칼럼 ‘두 줄의 현 위에 세상을 올려놓은 사나이’로 세상에 소개했다. 사람들은 그의 비극적인 운명에 눈물을 흘렸고, 어려움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간직한 채 좌절하지 않는 남자를 보았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독지가들이 보내준 새 첼로와 바이올린을 건네면서 저자는 너새니얼을 보호시설로 이끌기 위한 설득에 돌입한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 치료방법도 모색한다. 너새니얼에 대한 연재 기사에서 노숙인의 비참한 삶이 부각되면서 시 당국이 노숙인의 환경 개선에 착수토록 하는 성과도 얻는다.

둘 다 50대인 저자와 너새니얼의 관계는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협주’로 발전한다. 저자는 너새니얼의 회복을 위해 세계적인 첼리스트이자 너새니얼의 줄리아드 동창인 요요마와의 만남도 주선한다. 너새니얼을 도우면서 저자는 자신의 일에서 새로운 긍지를 발견한다.

이야기의 결말은 실화답다. 너새니얼은 오케스트라 입단이라는 인생의 목표를 갖게 되지만 증상은 언제든지 악화될 수 있다는 ‘진행형’으로 끝난다. 그러나 너새니얼은 이제 혼자가 아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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