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맨얼굴’ 20선]<1>속마음을 들킨 위대한 예술가들

  • 입력 2009년 9월 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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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판타지의 역할을 한다. 기억 저편의 무엇에 대한 향수, 의식 바깥으로 밀어내버렸던 것들의 회귀. … 프로이트의 분석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어째서 이러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는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고,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관점만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작품의 기원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해석의 힘을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고흐 자화상엔 어머니의 슬픔이…

고흐는 어째서 자신의 귀를 자르고 그 모습을 자화상으로 남겼을까. 뭉크의 소리 없는 ‘절규’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미술작품은 화가의 욕망과 무의식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일종의 암호다. 저자는 이 암호를 해독하는 방법으로 프로이트, 라캉 등의 이론을 이용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네 마그리트, 프리다 칼로 등 수수께끼 가득한 인생을 살았던 위대한 예술가 12명의 작품세계를 정신분석학을 통해 풀어냈다.

고흐의 어머니 아나는 고흐의 형을 유산한 뒤 아이를 또다시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평생 고흐에게 싸늘한 태도를 보였다. 고흐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슬픔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가학적인 성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 가학적인 성향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고흐는 약혼자가 있는 여자, 남편과 사별한 여인, 창녀 등 주로 불완전하고 상처받은 여자들을 사랑했다. 고흐는 이들의 결핍을 자신이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이런 고흐의 모습에서 타자를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이상화하고 미화하는 나르시시즘적 면모를 발견한다.

고흐가 마지막으로 집착한 인물은 고갱이었다. 고갱이 고흐에게 결별을 선언하자 고흐는 자신의 이상과 실제 사이에 생긴 불일치를 견디지 못하고 양쪽 귀를 자르고 만다. 그의 가학적인 성향이 폭발한 것이다.

“그는 나를 쇼핑백에 넣어 데려갔다.” 앤디 워홀은 친구와 처음 미국 뉴욕에서 생활을 시작했을 당시를 이렇게 표현했다. 비좁은 쇼핑백 속에서 몸을 한껏 움츠리고 있는 워홀의 모습은 어머니 배 속에 들어 있는 태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워홀은 일상생활에서 어린아이 같은 말과 행동, 간단한 스킨십에도 얼굴을 붉히는 순진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저자는 워홀의 이런 모습을 ‘아버지의 부재(不在)’로 설명한다. 워홀의 아버지는 워홀이 어렸을 때 3년간 투병생활을 하다 끝내 사망한다. 정신분석에서 자아의 성장은 ‘아버지 살해’를 통해 이뤄진다. 괴물을 죽이고 공주를 구출하듯 강력한 아버지의 영향력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워홀이 ‘살해’하기도 전에 워홀의 아버지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죽는다. 저자는 워홀의 캠벨수프 시리즈 역시 어린 시절에 즐겨 먹던 음식에 집착하는 퇴행적인 성향에서 출발한다고 분석한다. 고흐가 모성애의 결핍 때문에 고통받았다면 워홀의 삶을 결정지은 것은 아버지의 이른 죽음이었다.

이 외에도 저자는 얼굴 없는 여체가 자주 등장하는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어린 시절 흰 잠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자살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귀족 출신이면서 댄서와 창녀, 도박꾼 등 밑바닥 인생을 주로 화폭에 담은 툴루즈 로트레크의 내면에서는 병약하고 기형적인 몸 때문에 귀족사회와 가족에게 외면받은 상처를 읽어낸다.

저자는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이 대부분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못했으며 어머니의 사랑에 집착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정신분석에서 아버지는 이성 도덕 언어 체계 등을 상징한다. 결국 이들의 작품은 안온한 어머니의 품에서 억지로 ‘아버지의 세계’로 밀려난 결핍을 자신에게 익숙한 비언어적 수단으로 풀어내려던 일종의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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