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일에 몰입한 당신은 ‘우주의 중심’

  • 입력 2009년 8월 22일 02시 58분


◇일의 기쁨과 슬픔/알랭 드 보통 지음·정영목 옮김/376쪽·1만5000원·이레

《“당신은 왜 일을 하는가. 당신의 삶에서 일을 떼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일을 즐겁게, 혹은 즐겁지 않게 만드는가.”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남자 다섯이 영국 런던 인근의 방파제에 서서 나이지리아로 가는 화물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쁜 날씨 속에도 거대한 배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는 그윽한 눈빛이 가득했다. ‘일의 결과물이자 과정’인 화물의 여정을 상상하려는 듯, 배의 이물에서 고물까지 하나도 놓치려 하지 않았다. 저자는 ‘새를 관찰하는 조류학자처럼’ 노동의 결실을 살피던 이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뒤 ‘일’을 예술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작정한다.》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사랑’에 밀려 진지하게 예술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요소. 그것이 바로 ‘일’이라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일의 숨은 의미를 찾고자 저자는 창고, 초고층 빌딩, 비스킷 공장, 취업 박람회장, 인공위성 발사 현장, 다국적 회계 회사, 이윽고 참치를 잡는 어선의 갑판까지 찾아 나선다. 그렇게 퍼즐조각을 하나하나 맞춰 ‘일’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그가 가장 먼저 발견한 조각은 일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힘’이었다.

“화물선과 항구 설비는 실용적으로도 중요하고 우리에게 감정적인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왜 관련된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걸까 (…) 유조선이나 제지공장, 나아가서 어떤 분야든 ‘노동하는 세계에 깊은 존경심을 표현하면 이상하게 여기는’ 편견 때문이다.”

‘왜 일을 하는가’라는 거창한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그가 찾아낸 것은 간결하다. 바로 ‘생존’이다. 우리를 의미 상실의 위기로 몰아넣기 십상인, 단순한 ‘일’로 우리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한 것이다. “노동의 진부함을 생각하며 희미한 절망감을 느끼다가도, 거기에서 나오는 물질적 풍요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생존을 위해 일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은 별다른 의문이나 문제 제기 없이 일의 세계에 몰두한다.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믿음이 내재화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 믿음은 18세기 부르주아 사상가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2000년 만에 뒤집어 새로 만들어 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보수가 있는 일자리와 인간이 느끼는 만족은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부르주아 사상가들은 보수를 받는 일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인들은 이런 흐름을 물려받아 직업이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먼저 묻는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저자는 일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도록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룬다.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 특히 일은 의미 있게 느껴진다.

한발 나아가 저자는 ‘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 어렵다’는 통찰에 이른다. 일은 다른 데로 눈을 돌리기 어렵게 만드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고 현재를 역사의 정점으로 보는 것, 코앞에 닥친 회의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마감의 압박’을 느끼는 것은 일이 인간에게 마련해준 생활의 지혜와 다름없다.

“일은 최소한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 해 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 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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