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카페]패션센스는 불황일때 더 돋보인다

  • 입력 2009년 7월 17일 02시 56분


여러분께 ‘불황 패션’을 중계해 드리겠습니다. 불황이라 우울하지만 옷은 입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급적 돈 안 들이면서도 옷을 잘 입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복고풍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에 엄마의 옷장 속을 뒤지면 ‘보배’를 건질 수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전적 방법은 엄마가 웬만큼 패션 센스를 갖춰주셨을 때, 옷 보존 상태가 양호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유행은 돌고 돈다지만, 옛날 옷을 클래식하게 접근하면 ‘촌티’ 날 가능성이 큽니다. 오래된 옷을 입는 일은 고난도 패션작업입니다.

이럴 때 권하고 싶은 스타일링은 유머 요소를 살짝 넣는 겁니다. 옛날 실크 스카프를 낡은 티셔츠 위에 걸쳐볼 수 있겠죠. 구식 롱스커트에 뾰족구두는 절대로 노, 노(No no)! 단정한 블라우스에 발랄한 배지를 달거나, 라운드넥 가로 줄무늬 니트를 입은 뒤 단화를 신어야 ‘복고풍 모던 걸’이 됩니다.

아, 방금 전 솔깃한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일본 중저가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가 올가을부터 독일 유명 디자이너 질 샌더와 협업한 ‘+J 컬렉션 라인’을 선보인다는 소식입니다. ‘꿈의 셔츠’라 불리는 ‘질 샌더’의 흰 셔츠를 5만 원대에 살 수 있다니…. 남자 옷 재단을 여성복에 도입해 1990년대 미니멀리즘을 주도했던 그녀(질 샌더는 여성입니다!)의 손길이 마냥 기다려집니다.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협업은 불황 극복의 수단인 동시에 패션과 문화의 ‘탈경계, 융합’을 드러냅니다. 아울러 잘 재단된 흰 셔츠는 시대를 막론하고 멋쟁이들이 사랑하는, 불황에 효용 높은 ‘스테디 아이템’입니다.

이달 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쇼를 전하면서 불황 패션 중계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디자이너인 존 갈리아노는 이번에 망사 스커트와 가터벨트로 섹스 이미지를 드러냈습니다. 모델들이 옷 갈아입을 시간이 부족해 “그래, 오트 쿠튀르의 기본인 ‘구조’를 보여주자”며 다리에 스타킹만 신은 채 뛰쳐나오는 의도된 설정이었지만요. 섹스만큼 돈 안 드는 즐거움도 드물기 때문일까요. 불황에 더운 옷이 답답하게 느껴져서일까요.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불황의 경제학’이란 책에서 “지금 세계가 필요로 하는 건 대규모 구조작전”이라고 말합니다. 우울한 경제학자의 눈에는 불황의 터널이 길게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좀 폈는지 값비싼 신사복을 턱턱 사는 남자들이 늘었던데 이젠 불황 패션도 장기적 관점에서 고민해야겠습니다. 오버!

김선미 산업부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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