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오설록 티 뮤지엄’ ‘구경’에서 ‘체험’하는 공간으로

  • 입력 2009년 7월 1일 02시 57분


왼쪽 외벽 화산암으로 마감
찻잎 덖는 가마솥 설치 ‘눈길’

제주 서귀포시 인덕면 서광리에 있는 ‘오설록 티 뮤지엄’이 두 달간의 리뉴얼 공사를 마치고 4월 재개관했다. 이곳은 녹차 브랜드 오설록의 상품과 다기(茶器)를 선보이는 전시관. 2001년 완공한 기존 건물에 비해 건물 안팎으로 한국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영범 소갤러리 대표(52)가 리뉴얼 계획을 맡았다.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청담동에서 200여 개의 상업 공간을 디자인했다.

“기존 티 뮤지엄은 차(茶)에 대한 정보를 기술한 패널을 벽에 붙여 놓고, 유리 진열장에 다기를 늘어놓아 생동감을 주지 못했어요. 공간과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마 대표는 공간의 주인은 ‘보여주는 쪽’이 아니라 ‘보는 쪽’이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입구부터 출구까지 차를 주제로 새로 구성한 이 뮤지엄의 공간 스토리텔링은 관람객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 완성된다.

입구는 왼쪽 외벽을 화산암으로 마감하고 오른편에 목재 치장 벽을 세워 입지의 지역 특색을 살렸다. 예전에는 양쪽 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붉은 벽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나무 막대 사이에 틈을 주면서 가지런히 쌓아올려 만든 치장 벽에는 커다란 창을 틔워 들어오는 사람이 고즈넉한 중정(中庭)으로 시선을 돌리도록 연출했다.

입구를 지나면 조도(照度)를 낮춘 통로 끝으로 다기를 진열한 전시실 불빛이 보인다. 그 빛을 따라 걸어가면서 마주치는 세 개의 비(非)내력 배흘림기둥(가운데를 불룩하게 한 기둥)은 관람객이 공간을 경험하는 데 쓰는 감각을 하나 더 열어주는 요소다.

“뭐든 눈으로 오래 보다 보면 손으로 만지고 싶어지잖아요? 신기한 전시물 밑에 달랑 붙여놓은 ‘만지지 마시오’ 안내문은 배려가 부족해 보입니다. 절에 가서 배흘림기둥을 만졌을 때 느꼈던 포근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고 싶었어요.”

회백색 페인트가 발라져 있었던 전시실 내벽은 나무 소재로 아기자기하게 마감했다. 나무로 짜 붙인 상판에 전통건축 창살의 꽃문양 격자를 넣어 천장 불빛을 분산시켰다. 차를 만드는 공정을 담은 동영상 모니터를 전시실 가운데 우물에 설치한 것도 신선한 발상이다. 그는 “자극적인 영상에 익숙한 현대인은 심심한 박물관 모니터에 시선을 오래 주기 어렵다”며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줄지 고민하고 정성을 들인 만큼 어느 곳에서 어떻게 보여줘야 조금이라도 오래 눈길을 붙잡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시실 뒤편으로 빠져나가는 모퉁이에서 관객은 또 한번 놀란다. 이곳에는 찻잎을 덖는 커다란 가마솥이 있다. 실내를 가득 메우는 차향은 이곳에서 번져 나온다. 가공처리 이전의 순수한 차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싶어 하는 관람객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차를 구경하는 공간이 아닌 체험하는 공간의 스토리는 이곳에서 막을 내린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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