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이름으로 다시 모십니다”

  • 입력 2009년 6월 25일 02시 56분


58년간 외로이 묻혔던 애국혼에 한줄기 빛을… 가족 품에서 편히 쉬소서
李국방 “유해발굴 국가책무”

“내가 저분들 대신 저기에 묻혔을 수도 있었는데….”

23일 오전 경기 의왕시 모락산을 오르던 정재돈 씨(79)가 발걸음을 멈춘 채 눈시울을 붉혔다. 정 씨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장병들이 모락산 중턱에서 발굴한 국군 전사자 유해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6·25 참전용사인 그는 “저분은 나 대신 죽은 전우이고 난 그들의 희생 덕분에 덤으로 사는 것”이라며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을 달리던 전우들의 함성이 생생한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등산객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유해 발굴 현장 앞에서 경건한 자세로 묵념을 하거나 목례를 올렸다.

이 땅에 포성이 멈춘 지 56년이 흘렀지만 산하 곳곳에서 발굴되는 국군 전사자 유해들은 6·25가 남긴 상흔을 증언하며 6·25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호국영령의 얼이 그리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땅 속에 묻힌 채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기자는 6·25전쟁 발발 59주년을 맞아 이날 모락산 중턱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단원들의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에 동참했다. 현장에선 국군 전사자로 추정되는 유해 3구가 발굴됐다. 탄피와 전투화, 숟가락 등 유품 100여 점도 나왔다.

땅속에서 호국영령들의 충혼 증거를 건져 올리는 5시간에 걸친 발굴 작업은 시종 경건하고 엄숙했다. 모든 단원은 삽과 붓 등으로 전사자 유해나 유품을 수습하면서 조금이라도 훼손될까 극도로 조심스럽게 작업했다. 단원들은 “한 분의 유해, 마지막 뼛조각까지 놓치지 않도록 정확히 해야 한다”며 서로를 독려하기도 했다.

한편 국방부와 유엔군사령부는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유엔사 연병장에서 이상희 국방부 장관과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 군 원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유엔군 전사자 유해 송환식을 가졌다. 이날 송환된 유해는 4월 경북 영덕군에서 지역 주민들의 제보를 받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했다. 이 장관은 송환식 추도사에서 “긴 세월 이국에서 외롭게 남겨졌던 고인이 늦게나마 조국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돼 다행이다. 영면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아직 한국군 전사자 13만여 명, 유엔군 전사자 5만8000여 명의 유해가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며 “그분들을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모시는 일은 이 시대 군복을 입은 군인은 물론 국민 모두가 해야 할 범국가적 책무”라고 강조했다.

의왕=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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