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디트]“더빙은 제2의 창작… 캐릭터 성격까지 바꾸죠”

  • 입력 2009년 6월 23일 02시 58분


더빙디렉터 계인선 씨(오른쪽)가 애니메이션 영화 ‘링스 어드벤처’ 녹음실에서 더빙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성원아이컴
더빙디렉터 계인선 씨(오른쪽)가 애니메이션 영화 ‘링스 어드벤처’ 녹음실에서 더빙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성원아이컴
24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링스 어드벤처’에는 가수 은지원 씨와 ‘과속스캔들’ 아역배우 왕석현 군이 주인공 링스와 거스의 목소리를 맡았다. 7월 말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업’에서는 이순재 씨가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더빙에 도전한다. 영화 ‘아스테릭스: 미션올림픽 게임’의 예고편은 개그맨들의 목소리를 빌려 국내 버전으로 다시 제작했다.

더빙은 목소리만 들을 수 있는 ‘숨어 있는 세계’지만 이곳에도 보이지 않게 이 과정을 조율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더빙 디렉터’다. 이들은 번역작가 섭외부터 캐릭터 분석, 캐릭터의 목소리에 맞는 성우 섭외, 녹음 진행, 연기 지도, 편집까지 담당한다. 이들의 역할은 외화를 국내 실정에 맞게 현지화하는 것. 유아용으로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 이름을 모두 한국어로 바꾸기도 한다.

‘링스…’에서 더빙을 연출한 계인선 씨(38)는 경력 14년의 프리랜서 더빙디렉터다. 1995년 수입 만화의 더빙을 담당하는 애드원에 입사한 뒤 줄곧 TV 방영 만화와 외화 시리즈물, 다큐멘터리의 더빙 연출을 맡았다.

불문학을 전공한 그가 더빙디렉터로 나선 것은 어릴 적 즐겨 본 ‘주말의 명화’의 추억 때문이다. “어릴 땐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빙된 성우의 목소리를 비교하며 듣는 게 재밌었어요. 영화가 끝난 후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를 처음 보기 시작한 것도 성우 이름을 보기 위해서였죠.”

더빙은 단순히 목소리를 녹음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는 더빙을 ‘제2의 창작’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국내 버전으로 현지화하는 과정에서 캐릭터의 성격이 바뀌는 경우도 생긴다. ‘링스…’에서 왕 군이 맡은 거스는 원작에서 세상을 다 산 것 같은 냉소적인 어른 캐릭터였다. 하지만 국내 버전에서는 ‘삐딱’한 일곱 살 아이로 변했다. ‘과속스캔들’에서 왕 군이 보여줬던 캐릭터 그대로다.

“요즘 애들은 원작 애니메이션을 꿰뚫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원작과 더빙판을 비교하는 눈도 높아졌어요. 그럴 땐 원작과 비슷하게 따라갈지, 아니면 우리 식으로 다르게 해석할지 고민하죠. 하지만 원작에 집착하기보다 성우가 가진 캐릭터의 맛을 살려 변화를 주는 게 낫다고 봐요. 더빙도 하나의 창작이니까요.”

계 씨는 영어 공부를 위해 더빙판을 멀리하는 경우가 늘었지만 더빙판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글자보다 소리에 더 빨리 적응합니다. 자막을 보면 놓칠 수 있는 캐릭터의 표정 몸짓 발짓과 순식간의 움직임까지 포착할 수 있죠. 어릴 적 주말의 영화 속 성우들처럼 목소리로 기억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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