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팬텀씨]발레리나들 바닥 매트위에 줄줄이 드러누워…

  • 입력 2009년 6월 17일 20시 35분


무대 뒤 대기실의 모습들. 출처·사진 제공 극단 산(위) / 동아일보 자료사진
무대 뒤 대기실의 모습들. 출처·사진 제공 극단 산(위) / 동아일보 자료사진
-무대 뒤 대기 중인 배우들은 무엇을 하나요. (서연수 씨·31·서울 강남구 역삼동)

공연이 시작하면 무대 뒤 배우들은 연습에 한창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기실에서 나는 작은 소리도 공연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연습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대신 소리가 안 나는 범위 내에서 많은 것을 합니다.

소극장은 공간이 비좁은 편이어서 대기실은 '다용도실'이 됩니다. 28일까지 서울 대학로 두레홀 1관에서 공연하는 연극 '짬뽕'의 대기실은 한 마디로 '조리실'입니다. 연극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전날 중국집 춘래관에서 있었던 일을 다뤘습니다. 중국집이 배경이어서 극중에는 짬뽕 자장면이 소품으로 나옵니다. 극 초반 "자장면 공짜로 드실 분" 하며 신청을 받아 배달원을 자청한 관객 두 명을 무대에 올려 300원을 받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짬뽕과 자장면을 팔기도 하죠.

제작진은 무대가 조금이라도 실감나도록 보이기 위해 짬뽕과 자장면을 막 요리한 것처럼 준비합니다. 협찬을 해주는 근처 중국집에서 면과 짬뽕 소스, 자장 소스를 플라스틱 통에 배달해 옵니다. 그러면 대기실에서 가장 오래 있는 배우 송윤선 씨가 뜨거운 물에 면을 데우고, 소스는 전자레인지로 데워 음식을 완성합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는 좁은 공간 때문에 생기는 해프닝도 있습니다. 무대에서 퇴장한 배우가 밖으로 나갔다가 다른 경로로 대기실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죠. 그래서 배우들은 분장을 하고 밖으로 나가는 데 '짬뽕'에서 이병 역을 맡은 이건영 씨는 군인 복장을 하고 총을 멘 상태에서 나갔다가 순찰을 도는 경찰차에 발각돼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습니다.

연극 '레인 맨'에서 부르너 박사 역은 초반 등장 후 공연이 끝날 때쯤 잠깐 등장하기 때문에 무려 한 시간이 넘게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부르너 박사 역의 손진환 씨는 "배우 생활 20년 만에 이렇게 긴 대기시간은 처음"이라며 "휴식시간이 너무 길어 출연을 고사할까하다가 결국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요즘 '행복한 산행'이라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너무 무거운 책을 읽게 되면 책에 몰입하다가 공연을 놓치게 되니 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본 답니다.

발레공연의 대기실 풍경은 '병원 응급실'을 떠오르게 합니다. 무용수들이 매트를 갈고 바닥에 누워있는데요.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어 자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중력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몸을 풀고 있는 겁니다.

지난달 한국을 찾은 세계적인 테너 호세 카레라스는 감기로 목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기운이 목에 안 좋다는 그의 요청에 따라 냉방 시설을 가동하지 않아 관람객들은 더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카레라스의 대기실에서는 3대의 가습기가 계속 수증기를 뿜어냈습니다. 그는 사우나 같은 대기실에 앉아 목을 촉촉하게 만들었다가 무대에 오르곤 했지요.

이처럼 성악가들에게는 '물'이 중요합니다. 대기실에는 언제나 생수 병이 가득하지요. LG아트센터 공연기획팀 신호경 대리는 "성악이나 합창단 공연 때는 다른 연주자들보다 물을 2배 이상 더 준비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악 등 악기 연주자들은 체력 소모를 막기 위해 소화가 잘 되고 달콤한 바나나, 초콜릿 같은 음식을 선호한다는군요.

클래식 연주자들은 공연 전 신경이 예민한 경우가 많습니다. 양성원(첼로), 김선욱(피아노), 김희성(오르간) 씨 등은 대기실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달라고 공연장에 부탁합니다. 최상의 연주를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죠. 김 씨는 "워낙 긴장하는 편이라 대기실에는 부모님도 대기실에 못 오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4월 서울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오른 러시아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은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연습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숙소에도 그랜드 피아노를 준비해달라고 했다는군요. 3월에 내한한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알렉산더 리브라이히는 대기실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줄담배를 피우면서 긴장을 풀었다고 하네요.

4월 한국 무대에 선 영국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는 공연장에 놀러온 것처럼 여유를 보이며 혼자 흥얼거리며 대기실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휴식 시간 때 무대 뒤에서 악보를 보거나 오물오물 간식을 먹고 물을 마시는 모습이 일부 관객에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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