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이 삶, 희망은 사치…이설 첫 장편소설 ‘나쁜 피’

  • 입력 2009년 6월 17일 03시 00분


김이설 작가(34·사진)의 ‘나쁜 피’(민음사)는 냉혹하고 비정한 현실을 정면으로 돌파해가는 작품이다. 다양한 장르적 실험으로 지나치게 가벼워진 최근 한국소설의 경향과는 궤를 달리한다. 황폐한 천변어귀에서 살아가는 한 하류층 가족의 삶을 다룬 이 소설에는 섣부른 화해의 제스처나 환상으로의 도피가 없다. 엄혹한 현실 그 자체에 부대끼는 위악적 인물들. 가감 없는 치열한 묘사는 때론 참혹하고, 때론 불편하다.

김 씨는 1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문학평론가 김현은 소설을 읽는 것을 ‘내가 사는 곳이 살 만한 곳인지, 잘살고 있는지 자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며 “작가로 소설을 쓰는 행위도 똑같은 질문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삶의 모진 굴곡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 지체장애를 가진 모친, 알코올 의존증인 조모, 폭력적인 외삼촌, 불륜과 만성적 폭력에 병든 사촌 수연, 파리 날리는 오락실을 운영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주인공 화숙…. 현실은 절망적인데, 피해자도 가해자도 분명하지 않다. 이들은 쳇바퀴가 맞물리듯 서로가 서로에게 비수를 꽂으며 불행을 가속한다. 화숙은 외삼촌이 폭력을 휘두르면 갖은 방법으로 사촌 수연을 잔인하게 괴롭히고, 모친과 자신을 멸시한 이들에게 악의적인 거짓말을 통해 보복한다. 각자의 처지에서는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 뿐이지만 그렇게 얽힌 관계가 지워놓은 짐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한 가정의 파괴와 자살, 의문사가 잇따른다.

작가는 대안가족의 탄생을 암시하는 작품의 결말에서도 섣불리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소설은 현실과 동떨어져 나올 수 없다. 우리사회나 이웃의 모습을 보면 희망적인 것 같다가도 절망적인데 그런 모습을 함께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문학계간지 ‘세계의 문학’ 봄호에 전재했던 작품이다. 2006년 등단작인 ‘열세 살’ 이후부터 소외계층, 도시 하층계급이 맞닥뜨린 어두운 현실에 꾸준히 관심을 둬왔다. 그는 “흔히 소외계층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사실 그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냐”며 “상처받고 아픔을 간직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계속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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