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땅 밑에서 걸어나오다

  • 입력 2009년 6월 10일 02시 51분


■ 서울 동대문운동장 터 유적 이전 현장
우물 돌들 하나하나에 표시
유적공원에 원형대로 복원
우레탄 틀 씌워 통째로 옮기기도

지난해 조선시대 서울성곽과 이간수문(二間水門)이 발견된 서울 중구 을지로7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옛 동대문운동장 터) 건립 용지. 9일 문화재보존업체 엔가드 직원들이 이곳 조선 중기 건물 터에서 발견된 우물에 사용된 돌들을 하나하나 들어냈다.

원을 그리며 차곡차곡 쌓인 커다란 돌들에 D1, D2, E1, E2 등 알 수 없는 기호들이 그려져 있었다. 엔가드 보존과학실 현병대 부장은 “알파벳은 돌의 층수, 숫자는 해당 층의 돌을 순서대로 적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물을 재조립하기 위해 돌에 적은 위치 표시다. 직원들이 조심스럽게 돌 사이의 흙을 제거하고 천천히 돌을 빼냈다.

해체 유적은 당분간 옛 동대문운동장 터에 보관된 뒤 10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인근에 건립되는 유적공원으로 옮겨져 복원된다. 정밀 복원을 위해 우물을 3D(3차원) 입체 스캔했다.

“돌 위 흙더미가 무너지려 한다!” 돌 E1을 해체하던 중 갑자기 직원이 소리쳤다. 흙더미가 우물을 덮칠 경우 자칫 훼손될 수 있는 상황. 현 부장이 급히 해체 작업을 중지시킨 뒤 “버팀목을 만들고 다시 진행하자”며 한숨을 돌렸다.

중원문화재연구원(원장 차용걸)이 발굴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하도감(조선시대 수도 방위를 맡은 훈련도감의 분영), 군수공장 등 조선시대 유적이 쏟아져 나온 바 있다.

옛 동대문운동장 중 축구장 터에서 완벽한 형태로 발견된 군사시설과 집수시설은 그 모습 그대로 유적공원으로 옮겨진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지하광장과 인근 유적공원 2곳에 이전 보존되는 유적의 총면적은 5370m²에 달한다. 우물 유적을 옮기는 현장을 들여다봤다.

○ 도심 발견 대규모 유적 첫 이전 보존

도심에서 발견된 대규모 유적을 그대로 옮겨 보존하는 것은 처음이다. 도시화로 이미 사라졌고 문헌기록으로도 고증이 충분하다며 고고학이 외면해 온 조선 역사가 온전한 모습으로 땅 밑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조선 중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시대별 건물 터가 잇따라 발견된 야구장 터의 유적은 토층 단면의 보존처리, 유구(遺構·주춧돌 등 건축물의 자취) 하부 구조의 해체 복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전 보존된다. 야구장 터에서 나온 유구를 3D 스캐닝과 위치 표시 과정을 거쳐 해체한 분량이 약 200t에 달한다.

조선 중기 우물 2기는 최근에 통째로 임시 보관 장소로 옮겼다. 우물은 무게가 각각 13t, 6t, 깊이가 2m, 1.5m에 이른다. ①우물 안을 발포 우레탄으로 채워 내부 틀을 만들고 ②우물 바닥 깊이까지 우물 바깥쪽의 땅을 파 들어간 뒤 ③우물 바깥쪽을 발포 우레탄으로 감싸고 우물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나무로 외부 틀을 다시 만들었다. ④우물 바닥을 지층에서 분리하며 우레탄으로 아래쪽 틀을 만들어 우물을 이전했다. 여러 가지 꽃무늬가 새겨진 기와를 촘촘히 박아 만든 일제강점기 기와 도로는 전체 40m 중 10여 m(무게 15∼20t)를 그대로 땅에서 떠냈다.

○ 두 달 전 이번 보존 극적 결정

이번 일은 도심 개발과 문화재 보존, 활용의 윈윈 사례로 손꼽힌다. 불과 두 달 전인 4월까지만 해도 문화재위원회는 유적의 제자리 보존을 고집했고 서울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인근에 세워질 공원의 용도를 녹지와 이벤트 공간으로만 생각했다.

중원문화재연구원 김병희 선임연구원은 “서울시가 공원을 유적공원으로 재설계하고 문화재위원회가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치면서 이전 보존이 극적으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건립 용지인 서울 종로구 세종로 한복판에서 조선시대 주작대로인 육조거리를 발굴한 한강문화재연구원(원장 신숙정) 박준범 부원장은 “최근 서울 사대문 안의 땅 밑이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된 채 살아 숨쉬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며 “발굴도 중요하지만 유적을 어떻게 보여 주고 활용할 것인지 구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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