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극의 핵심인 대립구도 무너지다… 연극 ‘마라, 사드’

  • 입력 2009년 6월 4일 02시 59분


번잡한 무대… 뒤바뀐 캐릭터…

1964년 독일에서 초연한 페테르 바이스 원작의 ‘마라, 사드’는 내용과 양식에서 모두 이질적 요소의 충돌과 통합을 시도한 총체극으로 꼽힌다. 먼저 내용에선 18세기 프랑스혁명의 급진적 혁명지도자였던 장폴 마라(1743∼1793)와 혁명보다는 인간 내면의 심연을 파고든 사드 후작(1740∼1814)의 충돌을 다뤘다. 이 대립이 매력적인 것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었던 두 사상가의 ‘대리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라가 마르크스의 원형이라면 사드는 프로이트의 원형이다.

이 작품은 또 아르토의 잔혹극과 브레히트의 서사극이란 상호 대립적인 연극 양식을 접목한 실험적 형식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연극은 마라가 암살당한 15년 뒤인 1808년 샤렝통 요양원에 갇힌 사드가 정신병자들과 벌이는 극 중 극의 형식으로 펼쳐진다. 여기서 현실과 극을 분리하는 서사극의 양식은 대사를 까먹거나 엉뚱한 짓을 벌이는 정신병자의 일탈, 연극의 내용을 끊임없이 검열하는 샤렝통 병원장과 해설가의 개입을 통해 이뤄진다. 지도층을 비판하고 혁명을 찬양하는 내용이 나올 때마다 “아, 이건 다 지나간 이야기일 뿐, 요즘 현실과는 무관하다”는 해명은 역설적인 현실 비판의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잔혹극 양식은 기득권층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혁명의 해방감을 직설적으로 담아내는 노래와 정신병자들의 난동, 발작을 통해 나타난다.

따라서 이 연극의 성패는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 수밖에 없는 내용과 양식의 변증법적 통합이 좌우한다. 이를 위해선 먼저 마라와 사드, 서사극과 잔혹극의 대립구도부터 뚜렷이 각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정신병자와 간호사, 관객들까지 40여 명의 배우가 한꺼번에 등장한 번잡한 무대는 이런 대립구조를 희석시켰다. 김주완 씨가 연기한 마라는 정의의 화신이 아니라 회의에 찬 병든 왕으로 그려진 반면에 강신구 씨가 연기한 사드는 회의의 사도가 아니라 불요불굴의 마왕처럼 그려졌다. 이로 인해 ‘마라 vs 사드’의 팽팽한 대립구조가 무너지고 사드의 심연의 동굴 속에서 횃불을 든 마라가 길을 찾아 헤매는 ‘마라@사드’의 형국이 조성됐다.

기면증 환자로 계속 졸고 있다가 마라를 암살하는 코르데 역을 소화한 강지은 씨의 몽롱한 연기는 브레히트적 소격효과를 잘 살려냈다. 그러나 한국적 정서에 맞게 작곡, 개사된 노래들은 무대와 객석을 혼연일체로 몰고 가는 몰입효과를 살려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한국사회의 모순을 그토록 날카롭게 베어내던 연출가 박근형 씨의 면도날이 예전의 예기를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얼까. 어쩌면 이 작품의 논쟁적 내용과 형식이 한국적 토양에서 아직 충분히 발효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1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M씨어터. 1544-1887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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