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난 비극의 여왕 아닌 행운아” 희망 빛 영원히

  • 입력 2009년 5월 13일 18시 14분


◆한 줄기 빛 남기고 떠난 '희망 메신저'

(박제균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5월 13일 동아 뉴스 스테이션입니다.

'희망 메신저'로 잘 알려진 장영희 서강대 교수가 얼마전 별세했죠. 소아마비와 세차례 암선고를 딛고 강의와 수필, 기고 등을 통해 늘 희망을 얘기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김현수 앵커) 빈소에는 많은 제자들과 동료 교수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이 몰렸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제자로서 고 장영희 교수를 지켜본 이남희 기자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이 기자, 빈소 표정은 어땠습니까?

(이남희 기자) 네. 장 교수의 빈소에는 닷새 동안 수천명의 조문객들이 방문해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9일부터 오늘 장례식까지 제자들과 조교, 동료교수들이 그의 곁을 지켰고요. 고인의 에세이를 애독한 일반 시민의 조문 행렬도 이어졌습니다. 장 교수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의 인기검색어에 올랐는데요. 누리꾼들은 고인의 기사에 추모의 댓글을 달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장 교수가 남긴 저작들은 다시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교보문고는 11일 하루 장 교수가 쓴 저서의 판매량이 평소보다 14배 정도 늘었다고 밝혔는데요. 장 교수의 추모 열기는 희망에 목마른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박 앵커) '희망 메신저'란 별명이 독특한데, 장 교수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이) 뛰어난 영문학자이자 번역가였고, 이 시대를 대표하는 수필가였습니다. 특히 장 교수는 여러 수필집과 동아일보의 '동아광장' 칼럼을 통해 삶을 긍정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는데요.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 보라'고 쓴 그의 칼럼은 좌절한 이들에게 삶의 의지를 불어넣었습니다. 생소한 영문학 작품을 누구나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글로 풀어내는 것도 고인의 장기였습니다.

무엇보다 고인은 강의에 열정을 다한 스승이었습니다. 2002년 봄, 저는 고인의 '19세기 영미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은사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에 감복했는데요. 70명 넘는 학생들이 제출한 영어 리포트에 일일이 무시무시한 빨간 펜 코멘트를 꼼꼼히 달아 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암 투병 중에서도 강단에 서서 활기찬 수업을 이끌어 제자들을 감복시켰죠.

(인터뷰) 이형진/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3년

"수업 중간에 지적받으면 화내시거나 점수로 직결시키기보다는 예를 들면 노래를 시키신다던 지, 사실 대학수업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을 많이 배우게 해 주셨던 선생님이셨습니다. 정말 수업 자체가 발랄하고 저희도 교수님 따라서 소년, 소녀의 감성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던 수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 앵커) 실제 가까이 지켜 볼 땐 어땠나요? 사실 몸이 불편하고 아프다보면 화도 많이 내게 되고 그렇잖아요.

(이) 2006년 봄 스물네 차례의 항암치료를 마친 고인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요. 아픈 분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초연한 모습이었습니다. 오히려 투병생활을 하며 느낀 경험담을 유머러스하게 들려주시며 저를 웃게 만들었는데요. 예를 들어, "항암치료를 받을 땐 '피부가 촉촉해진다'는 여배우의 화장품 광고가 그저 덧없이 느껴지더니, 퇴원 후에는 그 광고에 귀가 다시 솔깃해지더라"고 고백하시더라고요. "방사선 치료 땐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이 칼 조각을 삼키는 것 같다"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밝은 표정은 여전했습니다. "하루하루를 낫는다는 의지로 살면, 그 시간이 쌓여 결국 낫게 된다"는 교수님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터뷰) 조숙환 /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재미있게 사시는 분이었고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스스로 감내하려고 노력하셨는데 그 노력하는 모습이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았어요. 그만큼 긍정적인 분으로 기억하고요. 아주 작은 것에도 신경을 쓰는 그런 예쁜 마음은 정말 닮고 싶죠."

(박 앵커) 교수로서, 또 취재원으로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

(이) 고인은 정 많고 따뜻한 인생의 선배였죠. 한편으론 제게 가장 엄격하고 무서운 스승이자 취재원이었습니다. 2006년 '여성동아' 기자 시절, 저는 고인을 인터뷰한 원고를 미리 보여드렸다가 당신을 "비극의 여왕으로 그렸다"며 무섭게 혼이 났습니다. 자신이 '신체장애, 암과 싸우는 극복의 상징'으로만 그려지는 걸 싫어하셨죠. 고인은 늘 입버릇처럼 "난 행운아"라고 말해왔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이 멋진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행복하다"면서 말이죠.

장영희 교수는 자신의 유작인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서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 희망의 메시지는 영원히 남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용기를 불어넣을 것입니다.

(박 앵커) 고결한 척 했던 전직 대통령 가족의 지저분한 모습이 낱낱이 드러나 허탈한 요즘, 천국으로 떠난 고인이 지상에 한 줄기 빛을 남겨두고 가신 것 같습니다. 이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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