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다함께/열린문화, 국경을 허문다]<6>결혼이야기

  • 입력 2009년 5월 13일 02시 54분


7일 인천 연수구 동춘동 인천여성의 광장에서 한국어 수업을 마치고 나온 아내들과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는 한국인 남편들. 왼쪽부터 김진석 백대중 이재호 씨. 인천=차준호 기자
7일 인천 연수구 동춘동 인천여성의 광장에서 한국어 수업을 마치고 나온 아내들과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는 한국인 남편들. 왼쪽부터 김진석 백대중 이재호 씨. 인천=차준호 기자
“나 하나만 믿고 낯선 한국에 온 아내가 늘 고맙죠”
위암투병 어머니 얘기에 국내 맞선 200여번 깨져
베트남서도 시골 찾아 손이 거친 아내 만났죠
아내 수준에 맞는 한국어강좌 찾아주고
한-베트남 부부들 만나 외로움 달래주려 노력해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한국 여성들이 내세우는 여러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어 외국 여성을 배우자로 맞았다는 것이 아마 가장 솔직한 표현일 겁니다.”

한국 남성들이 낯선 외국 여성을 평생의 반려자로 맞는 이유는 무엇일까. 7일 여성교육기관인 인천 연수구 동춘동 ‘여성의 광장’에서 만난 인천지역 다문화가정의 한국인 남편들은 이렇게 말했다. 남편의 가정을 이해하고, 경제적인 능력을 덜 따지는 외국 여성을 배우자로 맞았다는 것.

○ “나를 이해해줘야 진짜 배우자”

부동산 사업을 하는 백대중 씨(34)는 2004년경 맞선을 본 한국 여성들에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경제 능력을 갖춘 백 씨가 퇴짜를 당한 것은 어머니 병간호 때문이었다. “위암 수술을 받은 어머니가 계신다. 결혼을 하면 며느리로서 어머니 병간호를 해야 한다”는 말에 한국 여성들은 백 씨를 더는 만나주지 않았다.

백 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200여 번 맞선을 봤다. 간호사와 세무사를 비롯해 멀리 전남 보성까지 내려가 선을 봤지만 어머니 얘기를 꺼내는 순간 여성들의 얼굴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찡그려졌다.

고민 끝에 백 씨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외국 여성과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2007년 12월 베트남에서 보름 동안 머물며 무려 600여 명의 현지 여성과 맞선을 봤다. 결혼정보업체에 “비용은 얼마가 들어가도 좋으니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할 여성을 배우자로 맞고 싶다”며 간청했고 하루에 많게는 100여 명의 여성을 만났다. 그러나 호찌민 등 대도시에 사는 여성들은 한국 여성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결국 그는 호찌민에서 차로 10시간 떨어진 시골 출신 여성과 결혼을 했다.

“베트남 여성과 맞선을 봤을 때 얼굴은 보지도 않았어요. 손과 발이 거친 여자를 찾았죠. 고생을 많이 한 여성만이 정말 힘든 병간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였죠.”

자동차 부품 공장에 다니는 김진석 씨(40)는 직장의 2교대 근무 특성상 한국 여성을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한국 여성과 1년 6개월을 만났는데 ‘결혼을 하자’고 프러포즈를 하자 ‘연봉’ ‘자동차’ ‘집’ 등 경제적 조건을 따져 결국 헤어지게 됐다”며 “다시 한국 여성을 만나서 결혼을 하려면 마흔을 넘길 것 같고 결혼한다는 보장도 없어 국제결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2007년 김 씨는 결혼정보회사의 소개로 베트남을 방문한 지 3일 만에 결혼을 결정했다. 그는 “보통의 한국 남자들이 결혼 시기를 넘겨 결혼하려면 경제적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며 “한국 여성의 눈높이가 물질만능주의에 따라 더 높아져 한국 여성 만나기가 정말 힘들었다”고 푸념했다.

○ “결혼정보업체 말만 믿으면 낭패 ”

“저는 형님 대신 부모님을 모셔야 합니다. 이 얘기를 베트남 여성에게 꼭 전해주세요.”

인천의 한 주유소에서 관리부장으로 일하는 이재호 씨(41)는 2006년 베트남 여성과 선을 보면서 베트남 현지 결혼정보업체 관계자에게 신신당부했다. 당시 이 씨는 형이 지방의 조선소에 근무하는 관계로 자신이 노부모를 모셔야 하는 처지였다. 그는 “현재의 아내를 현지에서 만날 때 속사정을 털어놓았더니 흔쾌히 승낙해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인천지역 다문화가정 한국인 남편들은 “결혼정보업체는 결혼을 성사시켜야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베트남 등 현지 여성에게 한국 남성들을 ‘사장님’ ‘부자’ 등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지에서 여성을 만날 때 통역 또한 상당히 부실해 각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도 있다. 2007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K 씨(43)의 경우 아내가 “고급 승용차도 있고 회사도 운영한다는 정보업체의 말에 속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당황했다. K 씨는 “결혼정보업체가 나에 대해 엉터리로 말하는 바람에 결혼 초기 이혼 위기까지 겪는 등 가정생활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들이 강조하는 점은 솔직해야 한다는 것.

○ “결혼 초기 한국 적응 교육이 필수”

베트남 출신 여성과 2005년 결혼한 최모 씨(42·회사원). 그는 지난달 아들들이 한국어와 베트남어를 혼합한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아이들이 커서 한국어를 제대로 말하고 쓰지 못하면 어쩌나 늘 고민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최 씨는 아내의 한국어 교육에 무관심했다는 생각에 그 후 아내를 위한 한국어 강좌를 신청하고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 남편은 부인과 자녀의 교육에도 관심과 걱정이 많다. 이재호 씨는 결혼 초기 아내에게 맞는 한국어 강좌를 선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아내가 시부모를 모셔야 하는 데다 자녀들의 교육이 신경 쓰였기 때문. 하지만 처음에 경기 부천시의 한 교육기관이 실시한 ‘노래를 통해 한국어 배우기’에 아내를 보냈는데 낭패를 봤다. 그는 “한국어 기초도 모르는데 아내가 노래를 어떻게 배울 수 있겠느냐”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 씨는 결국 거액의 수강료를 내고 대학에서 실시하는 외국인 한국어 강좌에 아내를 보냈다.

이날 만난 남편들은 ‘한베(한국-베트남)가정’을 중심으로 아이들 ‘돌잔치’ ‘부인 생일 챙겨 주기’ ‘베트남 음식 만들어 나눠 먹기’ 등 다양한 가족 행사를 통해 아내들이 외로움을 달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 덕분에 이들은 모두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결혼 이주 여성을 대상으로 10여 년간 한국어를 가르쳐 온 박봉수 씨(47)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의견차로 부부간, 고부간 갈등을 겪는 다문화가정을 자주 본다”며 “이때 남편들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외국인 아내를 다그치면 더 큰 화근이 되는 만큼 한국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애정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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