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백년학생’…글에 뜻 있다면 ‘천년습작’ 각오”

  • 입력 2009년 5월 13일 02시 54분


김탁환 씨는 “독자들, 특히 습작에 몰두하는 청년들이 각자의 눈과 손과 걸음걸이를, 하여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진 제공 살림
김탁환 씨는 “독자들, 특히 습작에 몰두하는 청년들이 각자의 눈과 손과 걸음걸이를, 하여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진 제공 살림
글쓰기 관련 책 펴낸 김탁환 교수

“제가 읽은 책들이, 또 그 책들을 질투하며 베껴 쓴 시간들이 저를 작가로 만들어버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소설가이자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김탁환 씨가 글쓰기에 관한 책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천년습작’(살림)을 냈다. 2006∼2009년 KAIST에서 강의한 ‘스토리 디자인’ 수업과 학생들의 노트 등을 모았다. 김 씨는 ‘불멸’ ‘나, 황진이’ 등 장편을 냈으며 동아일보에 미래사회를 담은 테크노 스릴러 ‘눈먼 시계공’을 연재하고 있다.

김 씨는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작업실에 들어가서 그가 ‘예술에 임하는 태도’를 터득해야 한다며 발자크, 카프카, 릴케 등의 작품 속에서 찾아낸 ‘그 태도’를 이 책에 담았다. ‘김탁환의 작업실’을 책으로 공개한 셈이다.

그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조건으로 글쓰기에 매혹돼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카프카 같은 위대한 작가도 원하는 수준의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걱정에 늘 불안해했다. ‘변신’을 쓴 뒤에는 시간이 없었다고 변명을 해대며 혹평하기도 했다. 김 씨는 불안을 벗어나 글쓰기의 매혹에 빠지려면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기보다 “삶 전체를 살피면서, 매혹에 돌입하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일기쓰기’는 그중 하나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또 배워야 한다. 저자는 “배움은 만남”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아론자(唯我論子)”라며 “자기 안의 절대가치를 최고로 놓고 나머지를 배제하기 쉽다”고 지적한다. 비평가 김현은 시인들과의 사적인 만남에서 이런 태도를 극복했고, 프랑스 시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작품 하나하나를 천천히, 오랫동안 읽었다. 타인의 글을 무조건 비판하기보다 ‘따듯하게’ 품을 필요도 있다.

“…중요한 것은 손입니다. 발자크처럼 손으로 쉴 새 없이 집필하는 것, 과잉으로 소설 세계에 빠지는 것만이 뛰어난 소설가가 되는 길입니다.”

발자크는 소설을 집필할 때 책상 위에 조그만 수첩 하나만 올려놓았다. ‘고리오 영감’ 등 방대한 소설을 썼지만 필요한 자료를 읽고 또 읽어 책을 쓸 때는 자료가 더 필요 없을 정도였다. 발자크의 일과표에는 쉬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소설 속 인물에 빠진 채 행동해 사교계에서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였다고 한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는 소설 ‘부끄러움’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하려 했던 사건을 본 경험을 담았다.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을 철저히 객관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모든 글 속에는 작가의 삶이 투영된다. 하지만 사랑, 부끄러움, 증오 같은 감정을 타인도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솔직하고 정확하게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저자는 이를 위해 “세상에 벌거벗겨지고서도 당당할 수 있는 내공”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글쓰기와 이야기 만들기의 핵심은 그럴 듯한 흉내가 아니라 ‘진심 그 자체’”라며 글쓰기를 ‘테크닉’으로만 보거나 글을 컴퓨터로 자동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최근의 유행을 반대한다. 깨달음을 주는 책을 쓰기 위해서는 “잔재주가 아니라 삶을 관통하는 일관된 ‘자세’를 확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인간은 누구나 ‘백년학생(百年學生)’이고 글쓰기에 뜻을 뒀다면 ‘천년습작(千年習作)’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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