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상 받은 부모 위해 자식들이 까불고 노니…”

  • 입력 2009년 4월 29일 02시 59분


프랑스 고고학자가 렌즈에 담고 기록한 100년전 대한제국 말기는…

“조선인은 중국의 60년 주기를 따른다.…환갑은 인생에서 가장 근엄한 축제다. 부자든 빈자든, 귀족이든 평민이든, 장성한 시절이 끝나고 노년이 시작되는 이날을 그에 걸맞게 진심으로 경축한다.…여기에 아주 흥미롭고도 감동적인 부분을 덧붙여야 할 것이 있다. 늙은 부모가 여전히 살아서 예순한 번째 생일을 맞을 때, 이 잔칫상을 차린 자식은 어린애 같은 옷을 입고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고자 까불고 논다는 사실이다.”

○ 1904년 출간 ‘En Coree’ 국내 첫 번역

대한제국 말기를 지켜본 프랑스 고고학자가 묘사한 조선의 환갑 의례다. 1900∼1903년 조선에 머물며 경의선 철도와 광산 개발 관련 기술자문을 했던 에밀 부르다레가 1904년 프랑스에서 펴낸 ‘En Coree(조선에서)’를 번역한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글항아리)이 나왔다. 20세기 프랑스에서 나온 조선 관련 책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 책은 조선인의 효(孝) 관념과 가족 관계, 사회적 잠재력뿐 아니라 고종황제를 알현한 경험과 최초의 국립극장인 협률사(協律社)의 초기 공연 등 사료적 가치가 높은 내용들도 담았다.

○ “건축, 中 영향 받았지만 수준 매우 높아”

저자가 본 조선은 가난할망정 어린 자녀가 절대로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으며 버릇없는 아들일지라도 항상 부모에게 복종하고 깊이 공경하는 사회였다. 그는 이런 조선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7, 8세기 일본을 가르쳤고 1403년에는 활자(태종 3년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로 추정)를 발명한 민족”이라며 “이 겸손하고 작은 왕국은 반드시 알려지고 말 것이다”고 말한다. 초가집과 기와집, 궁궐 등 조선의 건축물에 대해서도 “응접실과 사당과 수도의 성문이 중국 것을 두드러지게 모사했지만 수준은 매우 높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상숭배와 민간신앙이라는 ‘미신’이 조선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아쉬워한다.

○ “고종, 온화한 미소로 외국인 잘 대해줘”

궁중연회에 초대받아 고종 황제를 만난 느낌도 담았다. 황제 앞에서 등을 돌려선 안 되기에 황제의 처소에 들어갔던 상태 그대로 머리와 몸을 깊숙이 숙인 채 퇴청했던 기억이다. 그는 “황제는 통치에 대한 걱정에도 불구하고 정중하게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고 주위 신하들보다 오히려 황제께서만 외국인들을 잘 대해주었다”고 기록했다. 알현을 마친 외국 귀빈들은 식당에서 “폐하의 만수무강”을 빌며 샴페인 잔을 들어 건배를 했고 이어지는 궁정무용수의 공연을 지켜봤다.

1902년 조선 최초의 국립극장인 협률사가 문을 연 직후의 공연도 흥미롭다. 400석 규모의 극장은 대단히 허름했고 무대와 첫 번째 객석 사이 공간은 교향악단 대신 광대들이 차지했다. 하루 저녁 한 희극의 두세 장(章)만 공연하기 때문에 전편을 보려면 여러 번 극장에 와야 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자연스러웠지만 처녀 역할을 남성이 맡았다. “가장 큰 배우가 처녀 역을 맡기 때문에 결국 단원 중에 목소리가 제일 걸걸하다. 어쨌든 이런 공연은 흥미롭다.” 책에는 양반의 가족, 서울(아현동 무동 연희장으로 추정)에서 벌어진 축제,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원각사비, 궁정무용수 등 당시 희귀사진 서른 장을 수록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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