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혁명 문화 판도를 바꾼다]<3·끝>디지털로 부활하는 역사

  • 입력 2009년 4월 28일 02시 55분


게임기술과 전통문화를 결합시킨 일본 교토의 ‘시구레덴’에서 관객들이 70장의 그림카드가 보이는 바닥을 뛰어다니며 각각 손에 든 단말기에 나온 일본 전통 시조와 같은 카드를 찾는 게임을 즐기고 있다. 교토=서영아  특파원
게임기술과 전통문화를 결합시킨 일본 교토의 ‘시구레덴’에서 관객들이 70장의 그림카드가 보이는 바닥을 뛰어다니며 각각 손에 든 단말기에 나온 일본 전통 시조와 같은 카드를 찾는 게임을 즐기고 있다. 교토=서영아 특파원
실사 배경과 가상의 콘텐츠를 접목한 증강현실(AR)을 모바일 기술에 결합시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개발 중인 문화유산 관광 콘텐츠의 개념도. 해당 장소에 가면 실제 경복궁 근정전과 3차원 디지털로 재현한 과거 근정전 행사를 결합시킨 영상을 휴대전화로 볼 수 있다. 사진 제공 KIST
실사 배경과 가상의 콘텐츠를 접목한 증강현실(AR)을 모바일 기술에 결합시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개발 중인 문화유산 관광 콘텐츠의 개념도. 해당 장소에 가면 실제 경복궁 근정전과 3차원 디지털로 재현한 과거 근정전 행사를 결합시킨 영상을 휴대전화로 볼 수 있다. 사진 제공 KIST
경북 안동시 안동문화콘텐츠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디지털 e-북으로 안동소주나 전통 제사상 등 전통 문화와 1998년 안동시 정상동에서 미라로 발견된 조선 양반 이응태의 사연을 소개한 ‘맛자랑 멋자랑’전을 보고 있다. 사진 제공 안동문화콘텐츠박물관
경북 안동시 안동문화콘텐츠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디지털 e-북으로 안동소주나 전통 제사상 등 전통 문화와 1998년 안동시 정상동에서 미라로 발견된 조선 양반 이응태의 사연을 소개한 ‘맛자랑 멋자랑’전을 보고 있다. 사진 제공 안동문화콘텐츠박물관
《“찾았다!” “여기 있다!”

어두운 조명 속에 70장의 거대한 그림카드가 비추는 바닥을 남녀노소가 분주히 오간다.

네댓 살 된 꼬마가 뛰어다니는가 하면 백발의 노인도 중얼중얼 시조를 읊으며 자리를 옮겨 다닌다.

각자 손에 든 단말기에 나온 시조와 같은 카드를 찾아가 단말기를 터치하면 1점 획득.

45인치 액정 모니터 70대가 그대로 70장의 거대한 카드놀이판이 된 셈이다.

카드게임이 끝나면 다른 참가자의 단말기와 연동해 ‘○명 중 ○등’ 식으로 순위도 나온다.》

닌텐도 게임하듯 日전통문화 즐긴다

관광명소에 시조 맞히기 게임

첨단 기술 연계 남녀노소 즐겨

한국도 경복궁 체험상품 개발

KIST 모바일 기술로 뒷받침

18일 일본 교토(京都)에서 서북쪽으로 30여 분 떨어진 관광명소 아라시야마(嵐山) 지역에 자리한 ‘시구레덴(時雨殿)’. ‘오구라(小倉) 하쿠닌잇슈(百人一首)의 전당’이란 부제가 붙은 이곳은 첨단 게임기술을 이용해 일본 전통문학인 하쿠닌잇슈를 체험하고 익히는 일종의 테마파크다. 2006년 1월 재단법인 ‘오구라 하쿠닌잇슈 문화재단’이 문을 연 뒤 이 지역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하쿠닌잇슈란 일본의 대표적 와카(和歌·31자로 된 일본 시조) 시인 100명의 시를 한 수씩 골라 시대 순으로 편찬한 시조집. 일본인들은 수백 년 전부터 이를 카드로 만들어 시조의 앞부분만 듣고 후반부의 카드를 찾아내는 속도를 겨루는 ‘가루타’라는 게임을 즐겨왔다. 이 가루타의 원리를 게임기회사 닌텐도가 디지털 기술을 도입해 현대화했다. 관람객들은 게임을 즐기며 전통 문학을 익힌다.

1층 접수카운터에서는 ‘닌텐도 DS’처럼 생긴 전용 게임 단말기인 ‘시구레덴 내비게이터’를 빌려준다. 단말기에 달린 센서와 천장에 있는 센서가 작동해 사용자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벽면 쪽에 설치된 전자병풍에 다가가면 단말기가 해당 시조를 낭송하고 뜻을 해석해주기도 한다. 1인당 단말기 사용시간은 20분으로 한정돼 있다. 1층 한구석에서는 전설의 시인들과 버추얼 리얼리티 화면을 매개로 일대일 가루타 대결을 할 수도, ‘전자우물’을 통해 시조의 내용을 주제로 수수께끼 게임을 하며 고전문학 지식을 넓혀나갈 수도 있다.

전통 문화유산이 문화기술(CT)을 통해 문화상품으로 되살아난다. 닌텐도의 기술과 일본 전통문학이 만난 시구레덴은 CT를 이용해 전통을 문화상품화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한국은 아직 문화유산 분야에서 CT 활용이 활발하지 않다. 주로 문화재의 정밀 실측이나 3차원(3D) 디지털 복원에 한정돼 CT가 활용됐다. 최근에는 문화유산이나 역사를 체험하는 문화콘텐츠 개발에 관심이 커지는 추세지만 아직은 연구와 시연 단계다.

전북 전주시 전주대 4D(4차원) 상영관은 국보 제62호 금산사 미륵전의 건립 과정이 담긴 설화를 4D 영상(3D 입체영상+촉각, 후각 등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기술)으로 체험할 수 있다. 나무가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며 물이 튀자 실제로 얼굴에 물이 튀고 번개가 치면 따로 마련된 조명이 번쩍인다. 영상 속 백제인들이 금산사 뒷산인 모악산의 소나무향이 느껴지게 할 수도 있다.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는 조선시대 청계천을 3D 디지털로 재현한 가상공간인 ‘케이브(cave)’가 있다. 바닥과 천장, 그리고 4면의 스크린에 조선시대 청계천이 펼쳐져 있어 입체안경을 끼고 걸으면 조선시대 청계천을 걷는 것처럼 느껴진다.

KIST는 올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120억 원을 지원받아 모바일 기술을 결합한 문화유산관광 콘텐츠를 개발 중이다. 가령 관람객이 경북 경주시 황룡사 9층 목탑 터에 도착해 스마트폰(정보검색·그림 송수신 기능을 갖춘 차세대 휴대전화)을 목탑으로 향하게 하면, 3D 디지털로 재현된 가상의 황룡사 9층 목탑이 스마트폰 화면에 비친 목탑 터 영상에 겹쳐 보인다. 올해 말 이와 같은 방법으로 경복궁을 체험 관광할 수 있는 시범 서비스가 선보일 예정이다. KIST는 2013년부터 문화유산 관광상품으로 상용화할 예정이며 연 1000억 원의 매출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김기헌 CT전략팀장은 “CT는 문화재를 박제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에 살아 숨쉬는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인 기술로 3D 디지털 복원 분야에서는 선진국 수준에 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콘텐츠를 개발해도 박물관이나 관련 산업계에서 비용 등을 이유로 잘 활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문화유산의 CT 활용은 공공 프로젝트의 성격이 강한 만큼 학계와 박물관, 산업계의 협력 모델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교토=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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