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현대미술로 보는 11억 대국의 오늘-내일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45분


웅크린 인도, 활짝 핀 상상력

《쓰러진 것일까,

막 일어서려는 것일까.

바닥에 누운 실물 크기 코끼리의 자세는 어정쩡하다. 표면은 정자 형태의 문양으로 뒤덮여 있다. 생명력의 과잉 분출과 에너지의 과도한 소모가 길항하는 이미지에서 인도의 오늘이 엿보인다.(바르티 케르의 ‘피부는 자신의 것이 아닌 언어를 말한다’)

유리에 고무스탬프를 붙여 완성한 초상화.

인도 파키스탄의 분쟁 와중에 실종된 사람들 이름이 인도의 다양한 언어로 새겨져 있다.

망각 속으로 사라진 이름을 되살려 역사가 남긴 희생과 상처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레나 사이니 칼라트의 ‘동의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배순훈)에서 막 오른 ‘인도현대미술-세 번째 눈을 떠라’전은 현대미술의 조형언어로 인도의 속내를 파헤친다. 세계가 주목하는 인도의 역동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형 기획전으로 설치 영상 회화 사진 등에서 27명 작가(팀)의 110여 점을 선보였다. ‘세 번째 눈’이란 눈 사이에 붙이는 장식 ‘빈디’를 가리키며, 지혜와 본질을 간파하는 눈을 의미한다. 》

‘창조와 파괴: 도시 풍경’ ‘반영들: 극단의 사이에서’ ‘비옥한 혼란’ 등 다섯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는 인도 현대미술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전시다. 김남인 학예사는 “여러 언어, 민족, 종교가 충돌하는 인도의 미술은 다양한 인식의 지평을 넘나들며 에너지를 뿜어낸다”며 “현실의 혼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견뎌내는 것에서 인도 미술의 힘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모리미술관 기획전을 가져왔는데 모리보다 공간이 넓은 한국 전시는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을 주지만 개별 작품에 대한 집중이 용이한 편. 6월 7일까지. 부대 행사도 다양하다(www.moca.go.kr). 5000원. 02-2188-6114

●카오스의 에너지

세계 10대에 드는 부호들이 사는 정보기술(IT) 강국이면서 3억 명의 인구가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는 나라. 아카데미상을 휩쓴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영화를 통해 인도의 단면을 그려냈다면 이 전시는 현대미술의 조형적 언어로 인도의 모순과 혼란을 짚어낸다.

두 얼굴의 인도를 보여준 지티시 칼라트의 ‘죽음의 격차’. 거대하게 확대된 1루피 동전 뒤쪽으로 상반된 텍스트를 담고 있는 렌티큘러 화면이 보인다. 스크린에서는 1루피로 통화가 가능하다는 전화광고와 1루피가 없어 자살한 소녀의 비극이 대비된다. 100명이 기억을 토대로 그린 인도 지도를 연속적으로 보여준 실파 굽타의 작업은 사회적으로 주입된 ‘단일한 공동체’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푸시파말라는 남인도 원주민에게 영국이 시도했던 신체 측정의 장면을 무겁지 않게 조명했다.

교통정체와 불법 건축으로 인한 퇴거 등 도시 문제를 파고든 지지 스카리아, 빈 깡통으로 도시의 풍요와 낭비를 반성하게 하는 비반 순다람 등의 작업은 우리의 현실도 돌아보게 한다.

●새로운 감각의 에너지

종이처럼 구겨진 인체가 벽에 붙어 있다. 실재에 대한 지각과 그 한계를 주제로 존재의 본질을 파고든 빌라수브라마니암의 작품. ‘나의 어린 시절은 매우 밝았다’ 등 제목 아래 전시장 관리인용 10개 의자와 오브제를 선보인 하르샤는 관람객과 관리인의 일상적 관계를 뒤엎는다. 젊은이들의 갈망하는 서구식 삶을 재현한 투크랄과 타그라, 대량생산된 스테인리스강 용품을 쌓아올린 수보드 굽타는 욕망을 성찰한다. 안경 안 쓴 낯선 간디의 얼굴을 담은 우표를 내놓은 아심 프로카야티야, 첨단 매체를 활용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 실파 굽타의 아나트 조시의 인터랙티브 작업도 흥미롭다.

인도 작가의 상상력은 세계 미술의 호흡과 맥을 같이한다. 대부분 젊은 세대이고,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이지만 작품들의 폭과 깊이는 놀랄 만큼 넓고 깊다. 전시장을 돌고 나면 문득 경제든 문화든 무한 질주하는 인도의 저력이 부럽고 두려워진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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