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독자의 삶 움직일 때 작가로서 더 큰 기쁨 없겠죠”

  • 입력 2009년 3월 30일 02시 59분


인터뷰를 위해 오랜만에 파리 나들이를 했다는 인기 작가 안나 가발다 씨. 세상에 대한 관찰을 즐기는 그는 “모든 사람의 삶이 한 권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파리=박선희 기자
인터뷰를 위해 오랜만에 파리 나들이를 했다는 인기 작가 안나 가발다 씨. 세상에 대한 관찰을 즐기는 그는 “모든 사람의 삶이 한 권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파리=박선희 기자
프랑스 인기작가 안나 가발다 파리 현지 인터뷰

《26일 오후 6시(현지 시간) 즐비한 카페와 인파로 붐비는 프랑스 파리의 번화가 오데옹역 인근의 작은 출판사 딜레탕트.

이곳에서 프랑스의 인기 작가 안나 가발다 씨(39)를 만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로 불리는 그는 섬세하고 따뜻한 감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세계 38개국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왔다. 전작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은 프랑스에서 170만 부 이상 나간 뒤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도 4월에 영화로 개봉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첫 소설집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부터 세 권의 장편소설과 청소년 소설 ‘35kg짜리 희망 덩어리’가 번역 출간돼 있다.

파리 동남쪽 믈룅에 살면서 6월경 발표할 다음 작품을 쓰고

있는 그는 “(인터뷰) 덕분에 모처럼 파리에 나와 기분 좋다”며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최근 한국에서 신작 ‘위로’가 출간됐다. 인생에 회의를 느끼는 중년의 건축가 샤를르가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품고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여인 케이트를 만나 새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주인공의 심리변화를 다룬 거침없는 문체가 인상적이다. 작품 계기와 메시지가 궁금하다.

“어느 날, 샤를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관계와 일, 삶의 피로에 지쳐버린 어느 남자가. 그의 감정과 함께 부침을 겪으며 작품을 써나갔다. 그가 우울해 할 때는 나도 한없이 침체됐고 활기를 되찾을 땐 나도 밝아졌다. 모든 게 쉽고 이기적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친절함과 따뜻함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다시 전쟁이 닥친다면, 타인을 위해 자신을 헌신할 평범한 영웅들이 지금 우리 주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작품들에는 감수성이 풍부하지만 상처를 간직한 주인공들이 각자의 아픔과 외로움을 사랑을 통해 치유해가는 과정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이런 주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이야기는 다 사랑 이야기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랑을 통해 상처를 극복한다’는 명제는 누구나 다 아는 클리셰(Clich´e·상투적 표현)지만, 그럼에도 사랑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 주인공들의 따뜻하고 친절하면서도 방관자적인 태도, 유머와 자격지심, 다른 세상에 동떨어진 느낌과 외로움 등에 내 모습이 투영된 것도 사실이다. 화가였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기질이기도 하고, 딸이 두 살 때 남편과 헤어진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가발다 씨는 현재 홀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매체에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작가라고 들었다. 그 이유가 대중에게 알려지고 나면 작가의 주특기인 ‘관찰’을 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맞다, 얼굴이 알려지는 거라면 질색이다.(웃음) 작가는 세상을 살면서 영향 받는 것들을 작품을 통해 다시 전달해줘야 한다. 유명인이 되면 그 과정에서 자연스러움이 사라져버린다. 관찰을 할 땐 이런 식이다. 누구를 만날 때 상대 대신 옆에 놓인 커피포트에 관심을 갖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투박하고 거친 손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섬세한 땀의 베개에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혀버리는 식이다. 사람들이 미처 이야기 하지 않은, 하지만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는 것을 끌어내는 것이 내 작업이다.”

―첫 작품 발표 이후부터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영화화되고 있다. 작가로서 이루고 싶은 건 뭔가.

“난 벌써 두 번의 ‘노벨상’을 받았다. 한 번은 어떤 독자가 눈이 가득 쌓인 자동차 위에 손으로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첫 작품 제목)고 쓴 엽서를 보내온 것이다. 독자의 삶에 내 작품이 투입돼 살아 숨쉬는 것만큼 큰 상은 없다. 두 번째는 인터뷰 준비 때문에 지하철에서 ‘함께…’를 다시 읽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내게 ‘그 책을 아직 끝내지 않았다니 정말 행운’이라고 말해줬던 일이다. 이 이상의 상이 작가에게 있을 수 있는가.”

―당신의 책을 읽을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부탁한다.

“여담이지만 딸아이는 한국 그림책을 무척 좋아하고 아들은 ‘요즘 대세는 한국 만화인 걸 모르느냐’고 말하고 다닌다.(웃음) 하지만 여러분을 ‘한국 독자들’이라고 특정 짓고 싶진 않다. 우린 같은 것에 감동을 느끼고 비슷한 감성을 소유한 ‘그냥 사람’들이니까….”

파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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