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타고 떠나자]<6>주말에도 양평은 40분

  • 입력 2009년 3월 26일 13시 46분


양수역에 도착하는 전철.
양수역에 도착하는 전철.
양평은 서울에서 가깝고도 먼 곳이다.

서울 중심부에서 불과 40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고생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주말 나들이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차를 몰고 가는 것 까지는 좋으나 돌아오는 길이 '주차장'이어서 지루함과 싸워야 한다. 오가는 시간 허비 하지 않고 양평으로 봄나들이 갈 방법은 없을까?

해답은 '중앙선 전철'에 있다.

중앙선 전철은 지난해 12월 29일 개통됐다. 서울 용산역을 출발해 옥수 회기 팔당 등을 거쳐 국수역까지 운행한다.

양평 부근에서 이 열차가 정차하는 곳곳에 관광지가 인접해 있어 주말 하루, 또는 반나절 나들이도 가능하다.

'양평가는 전철'을 타고 가는 봄나들이로 추천할 만한 곳은 경기 양평군 양서면의 양수역에서 내려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걸어서 돌아보는 코스.


▲동아닷컴 정주희 기자

●마음을 씻는 곳, 세미원

이제 운행을 시작한 지 3개월째. 중앙선 전철의 객차는 깨끗한 '새 차'다. '새 차 냄새'에는 포름알데히드 성분이 있다고 해서 최근에는 차를 뽑자마자 냄새를 없애는 처리를 하기도 하지만, '새 차 냄새'는 차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의 영원한 '로망'이 아니던가.

양수 역 역시 새로 지은 집. 기차를 타고 오가는 길이 산뜻하다.

이번 기차 여행의 교통수단은 전철이 전부다. 나머지 길은 걸어서 다니면 된다.

양수역에서 내려 정문 앞으로 곧게 뻗은 길을 따라 700여m를 걸으면 세미원에 도착한다. 걷는 시간은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약 10분.

세미원은 먹고 노는 장소는 아니다. 이곳은 수련 등 각종 수생식물을 키우며 식물의 환경 정화기능을 실험하는 일종의 연구시설. 식수원을 더욱 잘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게 목표다.

때문에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꽤 엄격한 규율을 지켜야 한다. 인터넷(http://www.semiwon.or.kr/seReserve/ReservationWrite.php)으로 예약을 하지 않고 가면 받아주지 않는다. 주중 주말을 막론하고 하루 2000명 이상은 입장할 수 없다.

쓰레기통이 없다.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 카메라는 되지만 삼각대는 안 된다. 음료수 음식물도 먹으면 안 된다. 곳곳에 비치된 생수만 마실 수 있다. 애완동물을 데리고 가도 안 된다. 입장료도 내면 안 된다. 무료이니까.

예약제 덕분에 주말에도 사람에 치이지 않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장점이다.

세미원(洗美苑)은 '관수세심 관화미심(觀水洗心 觀花美心)'이라는 장자의 말에서 따온 이름이다.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곳이라는 뜻.

본 뜻을 모르면 자칫 '아름다움을 닦아내는 곳'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세미원에 갈 때는 여분의 양말 한 켤레를 챙기자. 약 16만m²(5만 평) 넓이의 세미원에서 걸어 다니는 통로는 대부분 돌로 된 빨래판으로 이뤄져 있다. 빨래판 위를 걸으며 마음을 씻으라는 뜻. 들어갈 때 신발을 벗으면 이들 빨래판의 주름에 발이 닿을 때마다 지압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세미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시물은 자성문(自省門).

돌로 된 둥그런 문 사이를 걸어서 지나는 자성문은 말 그래도 문을 지나면서 스스로를 반성하라는 뜻이다.

문 높이도 사람 키 보다 다소 낮다. 이곳을 통과하려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 고개를 숙이면 문턱에 음각돼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자연에 공손하면, 자연도 우리에게 공손합니다.'

세미원에서 까다로운 규칙을 지키며 마음을 씻고 고개를 숙이는 대상은 결국 자연이다. 자연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지만 자연을 잊고 사는 도시인들. 세미원의 식물과 시설, 조형물들은 가는 곳마다 집요하게 관람객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한송정 달 밝은 밤에 경포대에 물결 잔 제 유신한 백구는 오라가락 하건마는 어떻다 우리의 왕손은 가고 아니 오는고.'

세미원에는 자연을 벗하며 자연 속에서 자신을 찾던 문인들의 글귀가 새겨진 아크릴판 상자가 곳곳에 세워져 있다. 이른바 시등(詩燈)이다.

이 밖에 두물머리의 물을 길어다 담아 놓은 항아리로 분수를 만든 '한강청정기원제단', 모네의 그림 속에 나오는 연못을 그대로 재현한 '모네의 정원', 하천의 수위를 측정하는 도구인 수표(水標)를 테마로 만든 '수표 분수' 등도 볼거리.

세미원의 진면목을 보려면 날씨가 풀려 연못 전체가 연꽃과 연잎으로 가득 채워질 때 가는 것도 좋다. 연못엔 어린아이 키만 한 수련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세미원을 찾은 24일에는 안타깝게도 계절이 맞지 않아 온실 밖에서는 수련을 볼 수 없었다.


▲동아일보 나성엽 기자

●다리 건너 석창원으로

세미원에서 마음을 씻은 다음 바로 옆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바로 세미원 강 건너로 오게 된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인 이곳에는 온실이 하나 있다.

맑은 물만 먹고 살아 선비 정신과 일맥상통한다는 식물 석창포가 주로 심어져 있는 1650여m²(500여 평) 넓이의 온실에서는 정선의 금강산 그림을 나무와 꽃을 이용해 재현한 '겸제의 금강산도', 수증기를 이용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 것으로 알려진 세종시대 온실, 요즘 '캠핑카'에 해당하는 고려시대 이규보 선생의 '사륜정' 등이 복원되어 있다.

규모가 크지 않아 걸어서 보기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졸졸 흐르는 작은 시냇가의 의자에 앉아 쉬면서 식물들이 뿜어내는 맑은 공기를 숨쉬는 즐거움도 크다.

●다시 서울로

두물머리에서 다시 양수역으로 오는 거리는 약 2㎞. 천천히 걸어 30여분이 걸리지만 주위로 연꽃이 피는 산책로여서 지루함이 없다.

맑은 강바람이 걸음을 재촉하고 싶은 마음을 날려버린다.

몸과 마음을 씻는 반나절, 한나절짜리 일정. 학교 다니는 자녀가 있는 가족이라면 '놀토'(수업이 없는 토요일)가 아니더라도 부담 없이 나설 만 하다.

차 없이 가는 양평은 가깝고 또 가까운 곳이었다.

★TIP= 청량리 역을 출발하는 중앙선 무궁화호를 타고 당일로 용문역에서 내려서 버스 편으로 용문사를 다녀오는 코스도 좋다. 단, 지금은 용문사 경내 도로 포장공사로 어수선한 분위기. 공사는 4월 20일 끝난다.

글·사진=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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