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 감상 길잡이 20선]<6>파워 오브 아트

  • 입력 2009년 3월 23일 02시 56분


◇ 파워 오브 아트/사이먼 샤마 지음/아트북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벽화에서 살가죽이 벗겨진 성 바르톨로메오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냈고, 조르조네는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비드로 자신을 재현했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방탕한 바쿠스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뒤 살해된 골리앗의 모습으로 마감했다. 왜 그는 자신을 죄인의 모습으로 재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명작에 담긴 예술가들의 고뇌

안내를 들으며 미술관을 거닐고 나면 그림과 화가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영국 BBC가 2006년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토대로 쓰인 이 책은 그런 속단을 경계한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유럽 곳곳을 취재하며 제작을 주도한 저자는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미술사학 교수다. 렘브란트, 고흐, 피카소를 미뤄두고 책 첫 장에 풀어낸 카라바조 이야기는 그의 작품 ‘메두사의 머리’만큼 강렬하다.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에 걸려 있는 ‘메두사의 머리’는 공포영화 클라이맥스처럼 섬뜩한 그림이다. 잘려나간 목에서 터져 나온 질척한 핏줄기, 일그러진 입, 치켜뜬 채 굳어진 눈동자는 머리카락의 뱀들보다 오싹한 기억으로 남는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같은 주제를 다룬 그림은 1580년대 후반 유실됐다. 카라바조의 표현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하지만 다빈치의 화풍에 익숙한 독자는 글을 읽으며 두 메두사의 차이를 어렴풋이 짐작해 보게 된다.

다빈치는 정확한 인물 묘사를 위해서 시체 해부를 주저하지 않은 과학적인 예술가다. 반면 카라바조는 허리춤에 늘 칼을 차고 다니며 길거리 싸움질을 일삼은 망나니였다. 그는 후원자인 델 몬테 추기경의 권위를 등에 업고 사형장과 감옥을 맘대로 드나들었다. 거기서 눈으로 채집한 고통이 카라바조의 화폭에 격정적인 사실감을 부여한 것이다.

위태로운 망나니짓을 일삼던 카라바조는 결국 테니스장에서 사소한 다툼 끝에 상대를 칼로 찔러 죽인다. 현상금이 걸린 살인자 신세가 된 그는 말년에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비드’에서 메두사의 머리만큼 많은 피를 뿜고 있는 목을 또 하나 그린다. 처참하게 뭉개진 골리앗의 머리에 새겨 넣은 카라바조의 얼굴은 속죄를 머금은 우울한 자화상이다.

제목에 붙은 ‘파워’는 예술 자체의 힘보다는 작품의 의도를 관철한 예술가들의 의지를 가리킨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단순히 손재주가 훌륭한 장인 이상의 무엇이 되고자” 치열하게 싸웠다. 그 싸움의 결과물을 전시한 갤러리는 점잖고 차분하며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걸작에는 관습에 도전한 위험한 열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후원자의 나태한 주문에 교묘히 도전한 렘브란트. 정치적 상황과 대결한 다비드와 터너, 피카소. 돌을 쪼개 자신을 변호한 베르니니. 오직 예술적 사명에만 몰두한 반 고흐와 로스코. 저자는 신념을 구현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감수한 갈등과 고통이 어떻게 작품 속에 녹아들었는지 차분히 들려준다.

“예술의 힘이란 결국 경탄의 힘이다. 예술은 결코 익숙한 세상을 복제해 제시하지 않는다. 예술은 아름다움의 구현을 넘어 익숙함을 파괴하려 애쓴다. 그 위험한 도전의 순간에 제시한 완벽한 해답은 예술가 자신조차 다시는 반복할 수 없는 것이다.”

5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현학적인 표현이나 해석이 별로 없어 책장이 수월하게 넘어간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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