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벌레가 나비로… 나비가 벌레로…

  • 입력 2009년 3월 21일 02시 58분


◇불꽃 비단벌레/최동호 지음/144쪽·8500원·서정시학

시인 최동호가 파고든 일상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진 공이/후두둑 여기저기서/물방울처럼 튀어오른다/공속에서 재바른/손이 불쑥 따라나와/튀어오르는 공을 사로잡는다…잡았던 공의 꼬리를 저도 모르게/놓쳐버리는 순간 마술사가/허공에서 천 개의 손을 놀리듯/수백만 개의 공이 후두두둑 꽃처럼 피어난다”(‘수백만 개의 공놀이’)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최동호 고려대 교수가 7년 만에 신작시집 ‘불꽃 비단벌레’를 펴냈다. 최 교수의 제자이자 문학평론가로도 활동 중인 권혁웅 시인은 해설에서 이 시집을 “정신주의에 바쳐진 하나의 경전”이라고 정의했다. 권 시인의 분석에 따르면 ‘정신주의’는 ‘역사성에 토대를 두면서도 시학의 진보성, 리얼리즘을 갖춘 전인(全人)의 철학’으로 풀이된다.

신작 시집에 실린 시들은 이처럼 시인이 비평가로서 오래도록 천착해 온 ‘정신주의’ 이론을 시작(詩作)으로 구현시킨 실례들이다. ‘정신주의의 구극을 가고 싶었다’고 서문에 밝힌 시인의 말처럼, 시인을 시를 통해 역사성에 대한 탐구, 철학적 모색뿐 아니라 일상의 진실을 구체적으로 파고드는 리얼리즘적 세계까지 다채롭게 보여준다.

“돈암동 시장 어귀/매일 아침 파를 다듬는/할머니가 길모퉁이에 있었다 일 년 내내/고개를 들지도 않고/파를 다듬는 할머니…흙 묻은 손으로 쓸어올리는/파 할머니 얼굴에서 흘깃/돌보다 강인한/우리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돈암동 파 할머니’)

‘카프카와 석가와 장자와 어머니, 어머니’ ‘몽유조어도’ 등에서는 노장사상의 정수와 불교 철학이 담겨 있다.

‘벌레가 나비가 되고/나비가 벌레가 되고 다시/나는 어머니가 되고/전생의 허물을 벗은 어머니는 내가 되어/소리쳐 부를 수 없는/꿈속의 벌레 나를 바라본다’ (‘카프카와 석가와 장자와 어머니, 어머니)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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