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17일 “국외문화재 환수의 일환으로 지난해 말 재미교포로부터 구입한 국새(높이 4.8cm, 무게 794g)를 분석한 결과 1903∼1905년 친서에 찍은 황제어새(皇帝御璽·1901∼1903년 제작 추정)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외교문서에 사용된 임금의 어새 실물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이 어새는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유리원판 필름(1945년 이전 촬영 추정)의 황제어새와 일치했다. 거북 모양의 손잡이와 붉은 술이 달려 있으며 몸체 사각형 면에 ‘황제어새’가 한자로 양각돼 있다.
고종, 국권 회복 비밀외교문서에 사용
문화재청은 이 어새의 국보 지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어새는 황제의 인장, 국새는 나라의 인장이라는 뜻이다.
고종의 어새가 찍힌 친서와 문서는 15통가량이며 친서는 대부분 을사늑약의 무효성, 국권침탈의 부당성을 서구 열강에 알렸다. 이번에 발견된 어새는 1903∼1906년 이탈리아 군주, 러시아 황제 등에게 보낸 친서에 찍힌 것과 같으며 서체가 둥글고 부드럽다. 1906년 1월 독일 황제에게 보낸 친서에 찍힌 황제어새의 서체는 각지고 반듯해 문화재청은 황제어새가 여러 종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일강제합방 문서에 사용된 대한제국의 국새인 ‘대한국새’는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다. 이 국새는 1911년 순종실록에 조선총독부에 인계됐다는 기록이 있다.
고종은 또 1914년 12월 독일 황제에게 보낸 친서 마지막 부분에 “내가 쓰는 국새를 빼앗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쓰는 이름인 ‘주연(珠淵·고종의 호)’을 새긴 도장을 쓸 수밖에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선의 국새는 여러 과(顆·도장을 세는 단위)가 있으나 화재 등으로 소실됐으며 고종 대의 국새도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거치며 대부분 사라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고종 대의 국새 3과를 소장하고 있으나 이 국새가 사용된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새나 어새와 달리 왕과 왕비의 존호를 새겨 종묘에 안치한 의례용인 어보(御寶)는 현재 320여 과가 남아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동아일보 김미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