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 감상 길잡이 20선]<4>천국을 훔친 화가들

  • 입력 2009년 3월 17일 02시 57분


◇ 천국을 훔친 화가들/노성두 지음/사계절

《“이 책은 천국을 훔친 화가들의 이야기다. 화가들이 훔쳐본 천국의 이야기다. 그들의 눈동자에 비친, 그들이 붓을 들기 전에 눈을 빛내며 홀로 마음에 비추어 본 천국의 풍경이다. 그들이 그린 천국은 때로 지상의 풍경을 닮았다. 인간의 삶의 터전이 이곳이요, 말씀이 빛이 되고 사람이 되어서 우리와 함께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성화에 숨은 상징과 실험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는 성경과 외경(外經)에 등장하는 내용을 표현한 그림들을 놓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저자의 설명을 듣다 보면 무심코 지나쳤을 그림 속의 작은 부분에도 많은 이야기와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브레히트 뒤러가 1507년에 그린 ‘아담과 이브’를 보면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한 손에 선악과를 들고 걸어 나오는 이브의 표정과 태도에는 주저함이 없다. 결단에 찬 행동으로 비친다. 반면 아담의 표정에는 의혹과 망설임이 스친다. 아담의 걸음걸이는 주춤거리며 뒤로 젖힌 오른손에는 내키지 않는 거부의 심정이 표현됐다.

성경에 나온 동일한 이야기를 그렸는데도 화가의 해석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그림들을 비교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1529년경)에서 등 뒤로 팔이 묶인 이삭은 입을 벌린 채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결박이 느슨해지면 달아나려는 듯 발에는 힘을 잔뜩 주고 있다. 반면 베로네세가 1585년경 그린 같은 제목의 작품에서 이삭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묶여 있지도 않으며 순종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소년 다윗의 이야기도 종교화의 단골 소재다. 저자는 “종교 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의 세력이 커지자 이탈리아에선 약한 이가 하느님의 도움으로 강한 적을 물리친다는 교리를 ‘다윗과 골리앗’의 그림을 통해 나타냈다”고 설명한다. 골리앗은 바티칸의 권위를 위협하는 프로테스탄트, 소년 다윗은 가톨릭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다윗이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모습을 본 뒤 계략을 써서 밧세바를 빼앗는 이야기도 화가들의 창작 의욕을 불태우기에 적당한 주제다.

파리스 보르도네의 ‘밧세바의 목욕’(1545년)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 주제를 다뤘는지 눈치 채기 어렵다. 목욕하는 밧세바는 크게 그렸지만 이를 훔쳐보는 다윗은 그림 상단의 건물 2층에 좁쌀만 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저자는 “밧세바의 알몸을 부각하고 다윗은 눈에 잘 띄지 않게 처리하는 것은 15세기 이후의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그린 그림도 시대를 따라 변했다. 15세기 중반 슈테판 로흐너의 ‘장미 정원의 성모’는 전반적으로 금빛 찬란하다. 라우렌티우스 마이스터가 이보다 앞서 그린 ‘천국 정원의 성모’도 인물의 배경이 온통 금빛이다. 그러다가 그림에서 금을 걷어내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1480년경 보티첼리가 그린 ‘성모자와 다섯 천사’에선 금빛 배경이 사라졌다.

얀 호사르트가 그린 ‘마리아와 아기 예수’(1430년경)에선 화가가 은근슬쩍 담은 상징이 재미있다. 예수를 감싸 안은 마리아의 오른손 엄지는 예수의 오른쪽 옆구리에 조심스럽게 닿아 있는데 훗날 로마 병사의 창에 찔리는 부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저자는 “화가들은 성서와 외경 기록, 교부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지만 한편으로 종교 주제의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대담한 실험을 감행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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