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노부부 자녀들 ‘한숨소리’

  • 입력 2009년 3월 13일 02시 58분


“우리 9남매, 부모님 소홀히 모신 적 없는데… 오해로 마음고생”

■ “우리가 불효자라뇨” 장남의 하소연

“영화 보니 몹쓸 자식” 악플-뒷말에 시달려

동생이 하는 식당, 단골손님이 불매운동도

《최영두라는 이름을 아는 독자는 거의 없을 듯싶다. 올해 나이 55세에 경북 봉화군 봉화읍 경북인터넷고 미술교사라고 얘기해도 마찬가지. 영화 ‘워낭소리’ 주인공 최원균 할아버지(81)의 장남이라고 설명해야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개봉 55일 만인 11일, 관객 250만 명을 넘어서면서 ‘워낭소리’의 울림이 점점 커지지만 할아버지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인터넷 악플은 이렇다. 부모는 버려두고 자기들끼리만 호의호식한다, 부모는 먹을거리 잔뜩 보내는데 자식들은 찾아오지도 않네…. 사실인지 궁금해서 영두 씨에게 전화하니 직접 보자고 했다. 10일 학교 교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 형제들이 마음고생을 한다고 입을 열었다. “우리 9남매가 소문난 효자는 못 돼도 부모님을 소홀히 모신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제발 영화에서 본 것만 가지고 판단하지 말아 달라. 형제들이 매일 안부 전화 드리고 한 달에 한 번씩은 찾아뵌다”면서 말을 이어갔다.》


▲동아일보 박영대 기자

○ 단골은 외면, 거래처선 쑥덕쑥덕

“동생이 식당을 하는데 얼마 전 단골손님이 찾아와 ‘영화에서 보니 당신 불효자더군’이라고 말했다. 이 손님은 ‘불효자가 ××하네’라는 메모를 남기고 주변 사람에게는 그 식당을 이용하지 말자고 얘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특용 채소를 호텔에 납품하는 다른 동생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거래처에 가면 내가 (영화에 나온 할아버지) 아들이라고 말해왔는데 요즘 경쟁업체 관계자들이 쑥덕거린다. 영화가 뜨니까 상품 질이 떨어지는 거 아니냐고”라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영두 씨는 평소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이제 학생들 앞에 서는 것이 망설여질 정도라며 한숨을 지었다. 또 손자 손녀들은 자기 부모를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악플을 볼 때마다 속상하다고 했다.

영화를 제작할 때는 자녀가 등장하는 장면도 많이 찍었다. 할아버지와 소에게 초점을 맞추다 보니 편집과정에서 대부분 삭제됐다. 추석에 모여 “아버지 힘든데 늙은 소 팔아버려요”라고 말하는 부분만 남았다. 할아버지가 다리를 질질 끌면서 농사를 지어 거둔 쌀을 자녀에게 보낼 때는 ‘서울 방배2동’이라는 주소가 살짝 나온다.

영두 씨는 “무너진 축사도 나와 동생들이 다 고쳤다. 이런 장면이 다 삭제됐다”고 설명할 때 목소리를 높였다. (이충렬 감독은 지난달 27일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을 받은 뒤 “본의 아니게 할아버지 자제들을 불효자로 만들어 죄송하다”고 시상대에서 말했다.)

“나도 미술가로서 대도시에서 성공하고 싶었다. 자식들 교육도 문제였다. 하지만 9남매의 맏이이자 장남이다 보니 부모님을 곁에서 모시기 위해 봉화읍에서 살았다.”

영두 씨는 “부모님이 도시에 사는 자식 집에 들러도 하루를 안 계신다. 워낙 농촌생활에 익숙하신 분들이다. 영화에서 나오지만 일 자체가 생활인 아버지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부모님이 궁핍한 생활을 하시는 것처럼 묘사돼서 속상하다. 넉넉히는 못 드려도 매달 생활비를 드린다”고 얘기했다.

○ 관광사업에 대한 오해와 진실

할아버지 내외가 사는 산정마을까지는 봉화읍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다. 영화가 유명세를 타자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길까 걱정해 영두 씨는 요즘 부모 집에서 출퇴근한다. 낮에는 큰손녀와 큰며느리가 보살핀다.

할아버지 댁을 찾는 사람은 평일 40∼50명, 휴일 200∼300명. 봉화군에서 추진하는 ‘워낭소리’ 촬영지 관광사업이 본격화되면 관광객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영두 씨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언론보도처럼 내가 부모님 집 옆에 영상관을 짓고 관광사업을 하는 데 명시적으로 찬성한 적은 없다. 다만 찾아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부모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 부모님도 시골 인심에 어떻게 야박하게 굴 수 있느냐고 말씀하신다.”

할아버지는 요즘 관광객을 피하기 위해 아침에 빵과 우유를 챙겨서 집을 나선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많이 적응한 모습이지만 낯선 젊은이가 밤중에 방문을 갑자기 열었을 때는 영두 씨도 잠을 설쳤다.

어머니에 대한 편견도 영두 씨는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영화에서 매일 불평만 늘어놓는 분으로 묘사돼 있지만 사실은 원칙과 소신이 분명한 분이다. 시장에서 물건 살 때 ‘1만500원짜리 1만 원만 받고 드릴게요’라고 하면 ‘파는 사람도 남는 게 있어야지’라며 제 값을 다 주는 분이다.”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영화를 다시 찍을 용의가 있느냐는 물음에 영두 씨는 “글쎄요. 부모님이 안 찍는다고 하실 것 같은데요. 광고 촬영도 안하겠다고 하시고요”라고 대답했다.

기자가 영두 씨와 함께 찾아갔더니 할머니가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먼 길 오셨네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할아버지는 소 등을 쓰다듬고 축사를 살폈다. 영화에 나온 그대로였다.

봉화=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동아일보 박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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