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문학 ‘단편 꽃’ 피었습니다

  • 입력 2009년 3월 13일 02시 58분


스릴러 - SF - 판타지 등 선집 국내 출간 러시

‘유, 로봇’ ‘앱솔루트 바디’ ‘나의 식인룸메이트’….

이 책들의 공통점은 모두 장르문학 단편선이라는 것이다. 최근 SF, 판타지, 추리 스릴러 등 분야별 작가들이 참여한 장르문학 단편선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출판사 황금가지는 2006년 ‘한국 공포문학단편선’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매년 추리·스릴러, 판타지·SF 문학선을 출간하고 있다.

문학 전문 출판사인 시작도 지난해부터 스릴러, 환상문학 등 국내 장르문학 단편선 시리즈를 시작했으며 매년 한 권 이상씩 각 분야의 새 작품집을 선보일 예정이다. SF 전문출판사 오멜라스에서는 올가을 우주와 천문을 테마로 한 SF 단편소설집을 출간한다.

최근 장르문학 단편선 출간이 활발해진 것은 온라인 웹진 등을 중심으로 한 장르문학 창작집단이 활발해진 게 기반이 됐다.

현재 장르문학 작가들은 주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개설된 인터넷 웹진 ‘미러’ ‘크로스로드’ ‘커그’(SF·판타지)와 ‘매드클럽’(공포·스릴러), ‘한국미스터리창작모임’(추리) 등 분야별 창작집단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 작가들 “변변한 발표지면 없었는데…환영”

2003년부터 환상문학 웹진 ‘미러’를 운영해 온 박애진 작가는 “하이텔 PC통신 시절 판타지 동호회 활동을 했지만 좋은 작품이 올라와도 출판과 연결되기 힘들고 회원들의 결속력도 떨어져 작가군과 작품 발굴 자체가 힘들었다”며 “웹진을 통해 한 달에 한 번씩 새 작품을 선보이는 공신력 있는 장을 만들고 작가군을 형성해온 게 결실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장르문학은 등단 시스템이나 발표 지면, 문학상 등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 웹진과 장르문학 전문 계간지인 ‘판타스틱’, 그리고 부정기적으로 출간되는 장르문학 무크지인 ‘파우스트’ 등을 제외하면 게재할 지면이 거의 없다.

‘멀리 가는 이야기’를 쓴 SF 작가 김보영 씨는 “SF 분야의 유일한 문학상이었던 ‘과학기술창작문예’가 2007년 폐지된 뒤 SF 작가층이 얇아졌을 만큼 장르문학에서는 문학상 하나, 발표 지면 하나가 판도를 좌우한다”며 “정기적으로 단편선을 통해 독자들에게 작품을 선보이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창작 활동에 큰 유인동기가 된다”고 말했다.

○ 작품 옥석 가려낼 평론가 많이 나와야

황금가지 김준혁 편집장은 “단편으로 검증받은 작가들은 장편 출간의 기회를 얻기도 하고 영화 시나리오로 계약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단편선들의 시장 반응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4000∼5000부가 판매되며 평균 2, 3쇄를 찍지만 작가군 형성 자체가 미미한 점을 감안하면 아직 시작 단계. 박광규 계간 미스터리 편집장은 “우스갯소리로 국내 추리작가들의 작품은 ‘욕도 안 먹는 소설’이라고 한다.

읽는 독자가 없기 때문”이라며 “작년 한 해 추리소설이 300여 종 출간됐는데 국내 저작은 10%도 되지 않을 만큼 양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좋은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기 위해선 단발성 기획이 아니라 단행본 시리즈가 꾸준히 나오고 장르문학 비평이 활발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멜라스 박상준 대표는 “미국처럼 장르문학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단행본 시리즈의 장르문학 단편선이나 수상집 형태의 단편선이 다양하게 출간된다”며 “국내 출판시장도 이런 작품집들이 시리즈물을 통해 본격적으로 선보이면서 양질의 작품들이 생산되고 독자 저변이 확대되는 선순환 구조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포소설 ‘분신사바’ ‘이프’ 등을 쓴 이종호 작가는 “영미권 스릴러, 일본식 추리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국내 장르문학을 알릴 기회가 늘어나는 것은 다행스럽지만 초기 단계일수록 장르문학의 옥석을 가려주고 다양한 비교분석을 통한 담론을 내놓을 평론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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