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이오네스코와 함께 ‘배꼽잡는 부조리극’을…

  • 입력 2009년 3월 11일 03시 00분


“부조리극은 한국 소극장운동의 동력이 됐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연극을 올리다 보니 웃겨야 할 부조리극이 곧 어렵고 난해하면 ‘부조리한 극’이란 오해를 낳았습니다.”

부조리극의 창시자로 꼽히는 루마니아 출신 프랑스 극작가 에우제네 이오네스코의 탄생 100주년 기념 축제가 11일∼5월 10일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 등에서 열린다. 8개 단체가 참여한 이 축제에선 이오네스코의 희곡 33편 중 10편이 무대에 오른다. 9일 이 축제를 널리 알리는 ‘곰뱅이트기’(맛뵈기 행사)에 참석한 연극인들은 부조리극이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이야말로 부조리의 연속이었다고 털어놓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이오네스코의 작품 8편을 번역한 오세곤 순천향대 교수는 이오네스코의 작품을 오도한 사례를 지적했다.

연출가가 뭔 소리인지 모르면서 무대에 올렸던 ‘수업’, 번역본의 오류가 심해 연습을 다 마치고도 공연을 포기한 ‘왕은 죽어간다’, 언어유희의 묘미를 못 살린 ‘대머리 여가수’….

부조리극은 기본적으로 코미디다. 세상이 이치에 맞지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코믹 상황과 언어유희로 보여준다. 연출가 기국서 씨는 ‘골 때리는 연극’, 이윤택 씨는 ‘황당무계한 연극’이라고 말했다.

이번 축제에서 단막극 시리즈 연출을 맡은 오 교수는 이렇게 풀었다.

“자기 얼굴을 못보고 산 사람이 있습니다. 숨겨놓은 거울에 그 얼굴을 비춰 보여줍니다. 자기 얼굴인지 모르는 그는 ‘내가 저렇게 생겼으면 자살하고 말겠다’며 깔깔댑니다. 나중에 그게 자신의 얼굴임을 깨닫고 비참해지죠. 크게 웃을수록 더 비참해지는 거죠.” 그의 말을 빌리면 우리 연극계가 한동안 보여준 부조리극은 결국 그 거울이 너무 탁해 거기에 비춘 얼굴이 정작 누구인지 못 알아보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부조리한 상황 하나 더. 부조리극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이오네스코가 연극이 진행될수록 동작이 빨라지고 대사가 많아지는 동적인 작가라면 사뮈엘 베케트는 동작과 대사가 적어지고 조용해지는 정적인 작가다. 베케트 원작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한국에서 인기 있는 부조리극이자 세계무대에도 통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그 풀이가 재밌다. 베케트를 한국적으로 소화하려는 몸부림으로 배우가 펄쩍펄쩍 뛰는 동적인 연출을 구사한 것을 보고 ‘한국적 재해석’이라며 서구 연극인들이 경탄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무덤 속 이오네스코가 감탄할 만한 부조리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계면쩍어 하지는 말자. 세상이 원래 부조리하니까. 다만 이번 축제가 어렵고 난해할수록 대단하다고 느끼는 우리 안의 ‘부조리에 대한 부조리’를 함께 씻어주기를 기대해본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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