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그 사람의 운명”

  • 입력 2009년 3월 5일 02시 58분


앨프리드 스티글리츠의 ‘골무를 낀 손’(위)과 리처드 애버던의 ‘조 루이스의 손’. 사진 제공 대림미술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의 ‘골무를 낀 손’(위)과 리처드 애버던의 ‘조 루이스의 손’. 사진 제공 대림미술관
대림미술관 헨리 불의 손 사진-조각 모음전

손끝이 갈라진 거친 손에서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손의 주인공은 조각가 헨리 무어. 그 옆에 자리한 주먹 쥔 손은 나태한 마음을 한 방에 날릴 듯 우리를 노려본다. 불후의 권투선수 조 루이스의 주먹이다.

두 사진은 리처드 애버던의 작품으로 5일∼5월 24일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02-720-0667)에서 열리는 ‘헨리 불 컬렉션: 손으로 말하다’전에서 볼 수 있다. 15년 동안 ‘손’을 주제로 한 사진과 조각 1000여 점을 수집한 미국의 사회사업가이자 컬렉터 헨리 불 씨(79)의 수집품 147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이 전시에 나온 앨프리드 스티글리츠의 ‘골무를 낀 손’은 1993년 불 씨가 처음 구입한 작품. 1920년 스티글리츠가 아내였던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손을 담은 이 사진의 다른 에디션은 2006년 소더비 경매에서 147만2000달러(당시 환율로 15억여 원)에 팔려 사진경매가 최고를 기록했다. 전시를 위해 내한한 큐레이터 엘가 윔머 씨는 “세계 어디서든 사람들이 이 전시를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손이 인간의 감정과 인생을 압축한 가장 보편적 주제이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1840년대부터 현대까지 연대기적으로 구성한 전시를 둘러보면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장 콕토, 마일스 데이비스 등의 사진에서는 예술가의 삶과 감정이 오롯이 묻어난다. 더불어 기도하는 손, 소통하는 손, 파괴하는 손 등 다양한 상징과 해석을 담은 손의 희로애락이 펼쳐진다.

사진 컬렉션에선 사진의 역사를 통해 접한 이미지와 다양한 기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윌리엄 탤벗의 포토제닉 드로잉 기법을 담은 사진과 이드위어드 머이브리지의 연속 동작을 기록한 사진 등 초기의 사진부터 만 레이, 다이앤 아버스, 어빙 펜, 안드레아스 구르스키까지 104명의 작품이 폭넓은 시대와 사조를 아우르며 20세기 사진사를 훑어간다. 조각도 규모는 크지 않아도 알차다. 로댕, 피카소, 브루스 나우먼, 루이즈 부르주아와 한국 작가 서도호 노상균 등 32명의 작품을 내놓았다.

모든 노동과 창조의 출발점인 손. 얼굴 못지않게 풍부한 손의 표정을 만나며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을 실감하게 된다. ‘인간의 손은 모든 면에서 그의 운명이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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