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진정 인간 위한 종교라면…” 시대 꿰뚫은 추기경 육성

  • 입력 2009년 2월 24일 16시 41분


(박제균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월 24일 동아뉴스 스테이션입니다.

지난 주 대한민국의 어른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셨습니다. 추모 열기가 온 나라를 뒤덮었는데요, 그 이유 중 하나는 고인이 엄혹했던 시절 생명과 인권,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정의의 충실한 수호자였기 때문입니다.

(김현수 앵커) 1980년 4월 한 달간 김 추기경은 당시 대한민국의 대표방송이던 동아방송 DBS에 출연해 발언한 내용들이 최근 공개됐는데요. 인터넷뉴스팀 정호재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정 기자, 이 방송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정호재) 네. 김 추기경은 1980년 4월1일부터 동아방송의 대담프로그램인 에 출연했는데요. 하루 15분씩 23회 방송이 됐고 모두 6시간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입니다. 당시 동아일보 논설주간인 권오기 전 통일 부총리가 대담자로 나섰습니다.

무엇보다 방송이 이뤄진 시기와 배경이 중요한데요. 바로 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반짝 찾아온 '서울의 봄'이 김 추기경의 방송 출연을 결심하게 된 배경으로 보입니다. 엄혹했던 유신독재 시절에, 김 추기경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이자 '살아있는 양심'으로 국민적인 존경을 받았는데요.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사회 혼란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 지자 김 추기경은 동아방송에 출연해 처음으로 한국 정치와 사회, 그리고 종교의 역할에 대해 자신의 솔직한 견해를 밝혔던 것입니다.

김 추기경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김수환 추기경(1980년 4월 1일 DBS 초대석 방송 내용)

"정치 기류에 있어서도 봄이 오고는 있다. 그러나 꽃샘추위도 있을 수 있듯이 그런 추위가 또 올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중략) 그래도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민주주의는 살려야 된다. 정부고 정당이고 국민이고 군이고 다 이걸 놓치면 안 된다. 이것은 추구해야 된다.(중략) 해야 한다야 누구든지 생각하는데,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건 확실히 우리가 해야 되는 확신을 가지면 할 수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1980년 4월 1일 DBS 초대석 방송 내용)

"정말 종교가 인간을 위한 종교라면 인간이 어떤 권력이나 체제아래에서 고통을 겪고 신음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종교가 입을 다문다고 할 때, 그것이 종교의 자세냐, 스스로 물어보고…그럴 수는 없다"

(박 앵커) 당시, 신군부의 부상을 예견하지 못한 정치인들은 '대통령중심제냐 내각제냐'를 놓고 큰 소란을 벌였는데요, 김 추기경께서는 단호하게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통령 중심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죠?

(정) 네. 그렇습니다. 4월 23일 방송 내용을 들어보시겠습니다.

김수환 추기경(1980년 4월 23일 DBS 초대석 방송 내용)

"대통령 중심제를 했더니 권력을 남용하기 쉽다면 권력남용을 막기 위해서 책임정치를 할 수 있도록 헌법에 강조하고...(중략) 그렇게 해서 그런 제도적인 보완만 있고, 지금까지 우리가 해오던 것(대통령 중심제)을 그런 점에 보완만 하고 사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는가? 그래서 점진적으로 우리가 민주주의로, 나은 민주주의로 나간다고 생각해야지..."

(김 앵커)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생각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진보적인 발언을 하셨다고 하지요?

(정) 네. 그렇습니다. 당시 우리사회는 반공과 안보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지배하는 사회였는데요. 김 추기경께서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생명의 존엄성이나 언론의 자유 등 보편적인 인권에 대한 내용을 강조하셨습니다. 김 추기경께서는 당시 사북탄광 사태 등의 심각한 노동 문제에 대해서도 인권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1980년 4월 12일 DBS 초대석 방송 내용)

"상품보다 더 귀한 인간이 폐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질은 공장에 들어가서 귀한 상품으로 돼서 나오는데, 그건 천한 물질 아니겠습니까? 근데 어떻게 귀한 인간은 공장에 들어가서 거꾸로 폐물이 돼 나오느냐...사실 이것은 표현에 끝나는 것은 아니고 실질적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폐물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방송이 끝나고 3주 뒤인 5월 17일,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서울의 봄'이 끝이 났는데요. 때문에 이 방송은 1980년대 이후 김 추기경의 철학과 삶의 궤적을 이해하는데 소중한 자료가 될 전망입니다.

(박 앵커)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김 추기경의 선종은 우리에게 진정한 종교인의 삶에 대해, 또한 각박한 우리 사회와 나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줬습니다. 정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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