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 학생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가시오

  • 입력 2009년 2월 17일 02시 56분


■ 권력에 당당히 맞선 김 추기경 ‘서릿발 어록’

1972년 10월 유신 정권욕에 눈먼 자 결국 불행히 끝날것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지나가십시오.”

1987년 6월 10일 한 무리의 학생들이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경찰은 성당 안까지 최루탄을 쏘며 해산을 시도했지만 성당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그렇게 대치하기를 며칠째. 정부의 고위 당국자가 한밤에 김수환 추기경을 찾아왔다. 김 추기경은 방문 이유를 금세 알아챘다. 그리고 꺼낸 말이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가라”는 것이었다.

김 추기경은 현대사의 큰 고비마다 올곧은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김 추기경이 남긴 말을 곱씹어 본다.

▽대주교님, 저는 주교 된 지 2년밖에 안됐습니다. 주교단에서도 제일 막내입니다. 그런 제가 그 무거운 십자가를 어떻게 지고 가겠습니까.(1968년 4월 서울대교구장 임명 소식을 전하는 주한 교황대사 히폴리토 로톨리 대주교에게)

▽대사님,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을 한마디도 빠뜨리지 말고 대통령께 보고하십시오. 10월 유신 같은 초헌법적 철권통치는 우리나라를 큰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정권욕에 눈이 먼 박 대통령 자신도 결국 불행하게 끝날 것입니다.(1972년 10월 17일 회의차 이탈리아 로마에 머물 때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을 발표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서부 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잖아요.(1980년 1월 1일 새해 인사차 방문 온 당시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이던 전두환 소장에게)

▽이 정권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게 있습니까. 총칼의 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하느님께서는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물은 것처럼 ‘네 아들, 네 제자, 네 국민인 박종철 군이 어디 있느냐’고 묻고 계십니다.”(1987년 1월 26일 박종철 군 추모미사 강론에서)

▽국민의 소리가 정치인들에게 안 들리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도 노벨상 타신 분답게 정치적으로 신뢰를 얻고 상생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얻기 위해서는 버려야 합니다. 버리면 얻습니다.(2001년 2월 5일 민주당 김중권 대표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제가 특별히 할 말은 없습니다만 무엇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이 중심을 잡아 줘야 한다는 얘기는 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망망대해에서 태풍을 만난 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장인 대통령께서 이를 잘 헤쳐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믿을 수 있어야 하고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2003년 6월 2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이 있은 후에야 정치가 있습니다. 말로만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우리의 말을 듣고 새기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 할 것입니다.(2006년 6월 2일 주교 서품 40주년 기념으로 한 가톨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동아닷컴 임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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